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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노메소드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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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노메소드로지(ethnomethodology)는, 美國의 社會學者, 할로 루도・가핀켈(1917-2011)이 發想한, 社會學者으로부터 태어난 硏究法. 只今까지의 社會學에서는 發見할 수 없었던 여러가지 社會秩序現象을, 가핀켈은 에스노메소드로지의 이름에 對해 硏究했다.

名稱의 由來편집

가핀켈이 陪審員硏究에 從事하고 있었을 때에, 陪審員들이, 陪審員으로서 判斷을 實施한다고 하는 課題를, 獨自的인 方法論으로 遂行하고 있는 것에 注目한 것으로부터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에스노메소드로지란, 社會成員에 依해서 利用되고 있는 方法論 그 自體여, 또 同時에, 그 方法論에 對한 硏究의 이름이기도 하다.

秩序問題로부터의 離脫편집

타르콧트・파손즈의 門下生인 할로 루도・가핀켈은, 파손즈가 「社會學의 根本問題」라고 부른 「秩序問題」에 對해서, 「社會秩序는 어떻게 可能한가」라고 하는 물음에 臨하고 있었다. 當初 가핀켈은, 알프레드・숭트의 아이디어에 힌트를 얻으면서, 이 물음에 對해서 파손즈와는 다른 解答을 이끌어내려고 試圖하고 있었지만, 이윽고 會話分析의 創始・ 하비・삭스등과 共同硏究를 하는 가운데, 이 물음을, 社會學者가 解答을 주어야 할 問題가 아니고, 社會成員들 自身에게 있어서의 課題이라고 把握하게 된다. 「秩序問題」는 어느 意味로 奇妙한 물음이다. 社會學者가 이것저것 생각하기 前에, 社會秩序는 社會生活을 營爲하는 成員들에 依해서, 벌써 成立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成立하고 있는 것에 對해서 「어떻게」라고 물을 때, 거기에는 「成立하고 있다」일에의 놀라움의 感覺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感覺은, 例를 들면 「行爲의 眞짜 意圖는 行爲自身 밖에 모른다」라고 하는 前提가 있는 것에도 不拘하고 「相對의 行爲의 意味를 알 수 있는 것은 왠지」라고 묻는 것等에서 생겨 온다. 또, 社會秩序가 이미 成立하고 있는 것이다면, 그러한 물음을 세우는 것으로는 別로, 實際로 成立하고 있는 그 秩序의 方式,──社 會의 成員이 나날의 生活을 營爲하고 方法(論) 그 自體──를 記述해 보는 것이 試圖되어도 괜찮을 것이다. 이렇게 하고 에스노메소드로지가 태어나 以降 가핀켈과 그 同僚나 弟子들은, 實際로 그 課題에 臨해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多樣한 「사람들의 方法論」이 記述되는 것과 同時에, 「秩序問題」를 成立시키고 있던 多樣한 前提──위의 例로 말하면 「行爲의 眞짜 意圖는 行爲自身 밖에 모른다」라고 하는 前提──쪽이, 오히려 잘못이었던 것이 指摘되어 가게 된다.

記述의 對象편집

現在에도, 社會學者은 多樣한 社會現象에 說明이나 解釋을 주는 것을 主된 職業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現象의 原因을 뒤지거나 그것을 分類하거나 하는 것으로 社會現象을 「잘 안다」 것으로 해 가는 것이다. 여기에 있을 姿勢로서 社會現象은 그것만으로는 잘 모르는 것이어, 社會學者가 分析하는 것으로보다 「안다」 것이 될 것이다는 것이 있다. 그에 對하고, 에스노메소드로지가 實施하는 것은, 어느 社會現象이, 社會現象이다고 理解되고 있는 것 그것을 記述하려고 하는 것이다. 例를 들어, 自殺率의 增減을 何等의 社會的要因에 依해서 說明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可能하게 하기 依해서는, 多樣한 「사람의 죽음」 가운데, 어떤 것이 「自殺」인가가 미리 모르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元來 自殺의 數를 세는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할 必要도 없이, 어느 죽음이 自殺일지가 不明하는 것은 많다. 그런데도, 그 죽음을 論해 取扱하는 사람들은, 多樣한 推測을 하면서, 그 죽어 붙고 判斷을 더하고 있다. , 거기에는, 自殺과 그 外의 죽음을 나누기 依한, 사람들의 方法論(基準)이 있다. 社會學도 그것을 前提로 하고 처음으로, 自殺率의 分析이 되어 있는 것이다. 勿論, 그러한 方法論(基準)은 자주 曖昧하고, 一義的인 結論을 이끄는 것은 되지 않는 것도 있다. 그에 對한 社會學者는 嚴密한 定義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實際의 곳은, 많은 社會學硏究에서는 通常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록 曖昧해도, 사람들의 活動은 아무렇게나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그만한 合理性이나 理解可能性이 있다(境遇에 따라서는 「曖昧하게 해 둔다」일도 하나의 合理的인 活動이다). 그처럼 營爲되고 있는 社會現象을, 社會學者 依한 嚴密한 定義에 依해서 옮겨놓는 것은, 그 現象에도라고 갖춰지고 있던 理解可能性을, 記述의 對象으로부터 除外해 버리게 된다. 이러한 通常의 社會學硏究 속에서는, 어느 社會現象 그 自體의 理解可能性이나, 또 社會現象을 만들어 내고 있는 成員의 組織이었던 活動(方法論的인 것)도, 硏究의 前提대로 되어 있고, 記述의 對象이 될 것은 없다. 그것을 鄭重하게 記述해 가자고 하는 것이, 에스노메소드로지의 試圖이다.

記述의 手法편집

에스노메소드로지 硏究에 對하고는 對象도 利用되는 手法도 多樣하고, 特히 이것이 아니면 안된다고 하는 決定은 없다. 넓게 利用되고 있는 것은 「會話分析」이라고 하는 手法으로, 日常場面으로부터 醫療, 法廷, 敎育, 企業 오피스 等, 여러가지 場面에 對하고, 會話를 通하고 成立하고 있는 多樣한 社會現象을 錄音・錄畫해, 제스추어等의 身體의 움직임도 包含한 詳細한 分析이 行해지고 있다. 勿論, 모든 社會現象이 會話를 通하고 成立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모든 場面에서 錄音・錄畫가 可能하다고는 할 수 없다. 現地調査에 依한 記錄이나 알아 들어, 新聞이나 雜誌記者의 分析, TV프로의 分析等을 通하고, 어느 現象이 어떻게 理解可能한 것으로 해 成立하고 있는지, 그것을 分明히 하는 多樣한 試圖가 되고 있다. 또, 그러한 境遇의 分析手法을 어떻게 磨해 나가는가 하는 일도, 現在進行中의 課題이다. 重要한 것은, 어느 現象이 確實히 일어나고 있는 그 現場으로 接近해, 社會成員이 그 現象을 組織이었던 方法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그런 方式을 記述하는 것이다. 우리는 恆常 社會秩序 속에 있으니까, 特別한 場所에 가지 않아도, 只今 여기에 있는 社會秩序의 硏究로부터 始作할 수도 있다. 實際로 「會話分析」은, 흔히 있던 日常會話 그것 自身이, 社會秩序를 갖춘 훌륭한 硏究對象인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부터 始作된 것이었다. 當然한 일이면서, 사람들이 行하고 있는 것을 記述하려고 하는 限, 社會學者도, 혼자의 社會成員으로서 最小限 거기서 行해지고 있는 것이 무엇으로 있는지를 「안다」誘引의 能力을 가지고 있을 必要가 있다. 法學的知識이 全혀 없는 사람에게는 裁判場面의 分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社會秩序가 成立하고 있는 그 자리 面으로 接近하려면 , 社會學者 쪽도, 서투르게든 그 秩序에 參加할 수 없으면 안 된다. 反對로 말하면, 社會學者가 「알려고」로서 參加해 나갈 수 있는 어떤 場面에 對해도, 어떤 現象에 對해서도, 에스노메소드로지 硏究는 거기서 곧바로 開始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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