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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듀르케임(Emile Durkheim, 1858年4月 15日 – 1917年 11月 15日)은, 프랑스의 社會學者. 듀르켐, 듀르케임等과 表記되기도 한다. 오규스트•콩트 後에 登場한 代表的인 綜合社會學의 提唱者이며, 그 學問的立場은, 方法論的集圑主義로 불린다. 또 社會學의 外, 教育學, 哲學等의 分野에서도 活躍했다.

略歷Edit

듀르케임은 프랑스의 로레이누 地方의 에피날로 代代 敬虔한 信仰을 保管・維持한 프랑스系 猶太人의 家系에 誕生하고 있다. 父親과 祖父는 라비였다. 또 그의 弟子와 親舊의 相當数는 猶太人이며, 哲學者였다. 그러나 그 自身은 世俗的인 人生을 보내고 있다. 事實, 그의 實績의 相當数는 宗教現象이 天賦의 要素보다는 오히려 社會的인 거기에 起因하고 있는 것을 實證한 것이었다.

그는 파리의 高等司法學校(에코르•노말•슈페리워르)에서 배운 後, 리세로 哲學의 教授를 맡았다. 1886年에는 獨逸에 留學해, 實證的 社會科學의 方法을 배웠다고 여겨진다. 다음 해의 1887年에는 프랑스에 돌아가, 보르도 大學校이 就職을 하는 것과 同時에, 르이즈•드레페스와 結婚한다. 이 보르도 時代에, 処女的「社會分業論」이나 代表的「自殺論」이 執筆되었다. 이러한 研究成果에 依해, 그의 名聲은 漸次 높아지게 되었다.

1902年, 듀르케임은 페르디난•뷰잇손의 後任으로서 소르본누 大學校의 教育科學講座로 變했다. 以後, 듀르케임의 研究에는 教育을 테마로 한 것이 많아져, 「教育과 社會學」이나「道德教育論」等의 論文을 執筆하기에 이른다(다만, 이것들이 私的으로서 出版되는 것은, 그의 死後의 일로이다). 또, 한편으로 그의 宗教研究도 継續되고 있어「宗教生活의 原初形態」도 執筆되었다. 이러한 研究成果는, 後에 教育社會學 및 宗教社會學으로서 成立하게 된다.

1914年, 第1次世界大戦이 勃發해, 이 戦争으로 듀르케임은 高等司法學校 時節의 옛親舊 쟌•죠레스나, 아들 안드레를 연달아 잃었다. 이러한 事件은, 平素의 多忙한 生活을 継續하는 듀르케임의 心身에 큰 打撃을 주게 되어, 1917年 5月에는 소르본누의 講義를 中止해, 静養하게 된다. 그러나 그 後, 그는 元来의 職務에 復歸할 것은 없고, 同年 11月에 환인이 되었다.

듀르케임의 實績Edit

社會學主義의 提唱者

듀르케임은 冨時로서는 斬新한 獨自的인 視點으로부터 社會現象을 分析해, 經驗科學으로서의 社會學의 立場(社會學主義)을 鮮明히 밝힌 人物이다. 實證主義의 科學으로서 오규스트•콩트에 依해서 創始 된 社會學이, 아직도 學問으로서 確立되어 있지 않은 状況을 본 듀르케임은, 다른 學問에는 없는 獨自的인 對象을 取扱하는 獨立한 科學으로서의 地位를 쌓아 올리기 依해서 尽力했다.

그는「社會分業論」에 있고, 社會學을「道德科學」이라고 評價해 諸個人의 統合을 재촉하는 社會的 要因으로서의 道德(規範)의 役割을 解明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後, 「社會學的方法의 規準」에 社會學과 社會學의 分析對象은「社會的 事實」인 것을 明示해, 同時代의 心理學的社會學이 立場을 取하고 있던 가브리엘•타르드를 強하게 批判했다.

듀르케임이 社會學 獨自的인 對象으로 한「社會學 事實」이란, 個人의 밖에 있어 個人의 行動이나 생각을 拘束하는, 集圑 혹은 全體社會에 共有된 行動•思考의 様式이어, 「集合表象」(地域이라면 集合意識)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即 人間의 行動이나 思考는, 個人을 超越 한 集圑이나 社會의 慣例, 習慣等에 依해서 支配되는 것이다(例를 들어, 첫 대면의 사람에게 人事를 하는 것, 거짓말 하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等은, 社會에 있어서의 一般的인 行動•思考의 패턴으로서 個人의 意識안에 定着한 것이다).

그는, 個人의 意識이 社會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個人의 意識을 根源으로 하면서, 그것과는 完全히 獨立한 社會의 意識이 諸個人을 束縛 継續 하고 있는 것이라고 主張해, 個人의 意識을 取扱하는 心理會的인 視點으로부터 社會現象을 分析할 수 없다고 하고, 타르드의 心理會學的社會社會의 立場을 批判했다.

그의 理論은 20 世紀初頭에 活躍한 많은 사유력한 心理學派로 成長하기에 이르고 있다. 社會學者, 民族學者, 人類學者等에게 다대한 影響을 주었다. 또, 프랑스에 있고 처음으로 社會學의 機関紙로서 L'ANN E SOCIOLOGIQUE(社會學年報, 1898年 發刊)를 創刊 해, 이 機関紙의 執筆者나 協力者들에 依해서 듀르케임 學派라고 하는 研究그룹이 形成되었다. 이 學派는, 그의 死後 마르셀•모스가 中心이 되어, 프랑스에 있어서 一大勢力에 成長하고 있다.

「自殺論」

19世紀後半에 유럽의 自殺率의 急上昇이 話題가 되는 中, 듀르케임이 39歳의 1897年에 發刊된「自殺論」에는「社會學研究」라고 하는 副題가 있어, 前題의「社會的事實」을 客觀的인 한편 實證的으로 分析 그 實態를 具體的인 事例에 依해서 分明히 하려고 한 듀르케임의 意欲作이다.

當時의 유럽 各國에서의 自殺率이 短期間에서는 거의 一定値를 나타낸 統計資料等에서, 各社會는 一定한 社會自殺率을 가지고 있다고 해, 社會의 特徴에 依해서 自殺이 어떻게 다를까를 分明히 하려고 했다. 듀르케임은, 이 研究에 對해 自殺을 個個의 人間의 心理로부터 説明하는 것이 아니라, 社會的要因(社會的事實)으로부터 4個에 類型化하고 있다.

發刊의 2年前에 著書「社會学的方法의 規準」에 對해 듀르케임은, 「社會的事實의 決定要因은, 個人의 意識은 아니고 先行한 社會的事實에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하는 説明의 公準을 세우고 있어 그 適應을 本書로 試圖하고 있다.

덧붙여 듀르케임 研究者 앤터니•기덴즈는, 論文「自殺의 理論」 中에서, 「本書는 膨大한 数에 오르는 自殺未遂의 問題를 無視해 버렸다」라고 批評하고 있다.

自殺의 4 分類

利他的自殺(集團本位的自殺)

集圑의 價値體系에 絶對的인 服従을 強要當하는 社會, 혹은 諸個人이 價値體系•規範에 自發的 한편 積極的으로 服従하려고 하는 社會로 보여지는 自殺의 形態. 獻身이나 自己犠牲이 強調되는 傳統的인 道德構造를 가지는 未開社會, 한층 더 그 延長線上에 있는 軍隊組織으로 賦與지는 自殺•殉職等이 該當하는(一般人보다 軍人 쪽이 自殺率이 높고, 軍隊内에서는 工兵이나 後方支援部隊의 兵士보다 戦鬪部隊의 兵士 쪽이 自殺率이 높다) 利己的自殺(自己本位的自殺) 過度의 孤獨感이나 焦燥感等에 依해 個人이 集團化의 関係가 弱해지는 것에 依해서 일어나는 自殺의 形態. 個人主義의 擴大에 反해 増大해 온 것으로 하고 있다. 듀르케임에 依하면 猶太教徒보다 天主教徒, 天主教徒보다 Protestant 教徒 쪽이 自殺率이 높고, 農村보다 都市, 既婚者보다 未婚者의 自殺率이 높다는 等 말한 것처럼 個人의 孤立을 부르기 쉬운 環境에 있어 自殺率이 높아진다고 하고 있다. 다만, 宗教別의 自殺率의 比較는, 그 後의 研究에 依해서 統計上의 잘못이 證明되어 듀르케임이 指摘할 程度로 큰 差異가 없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宗教上의 教義의 差異가 自殺率에 影響을 주는 것이 아니고, 近代化에 依해서 集團•社會의 結束度가 弱해져 온 結果的으로 일어나 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노미-目標自殺

社會的規則•規制가 없는(혹은 적다) 状態에 對해 일어나는 自殺의 形態. 集團•社會의 規範이 느슨해져, 보다 많은 自由가 獲得된 結果, 부풀어 오르는 自身의 欲望을 끝없게 継續 追求해서 實現될 수 없는 것에 幻滅 해 虚無感을 안아 自殺에 도달하는 것이다. 即, 無規制状態하에서 스스로의 欲望에 브레이크가 効果가 없게 되어, 自殺해 버리는 것으로, 不況期보다 好況期 쪽이 欲望이 過度하게 膨張하므로 自殺率이 높아진다.

宿命的自殺

集圑•社會의 規範에 依한 拘束力이 매우 強하고, 個人의 欲求를 過度하게 抑壓하는 것으로 일어나는 自殺의 形態

아노미

아노미-(anomie) 는,社會秩序가 흐트러져 混亂한 状態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아노모스(anomos)」을 語源으로 해, 宗教學에 對해 使用되고 있었지만, 듀르케임이 처음으로 社會學에 이 말을 利用한 것에 依해 一般化했다. 듀르케임은 이것을 近代社會의 病理로 간주했다. 社會의 規制나 規則이 느슨해진 状態에 對해서는, 個人이 반드시 自由롭게 된다고는 할 수 없지 않고, 오히려 不安定한 状況에 빠지는 것을 가리킨다. 規制나 規則이 느슨해지는 것은, 반드시 社會에 있어서 좋은 것은 아니다고 말할 수 있다.

「道德教育論」

듀르케임 晩年의 作. 소르본누 大學校으로 就任後, 宗教에 依拠 하지 않는 道德教育의 實践을 目標로 했다. 道德性의 제요소를 社會學的에 依해 分明히 한 後, 學校教育에 있어서의 實践方法에 對해 말하고 있다. 덧붙여 實践方法과 関係되어 體罰의 問題나 教科教育(生物學, 歴史, 藝術)이 完遂하는 役割에 對해서도 말하고 있다.

道德性의 三要素

規律의 精神

社會集團에의 愛着

意志의 自律性

이 中, 마지막「意志의 自律性」에 對해서는, 後半의 教育實践의 곳에서는 充分히 接할 수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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