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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Aristoteles紀元前 384年-紀元前 322年 3月 7日)는, 古代그리스哲學者.

人物槪要Edit

풀라톤의 弟子이며, 소크라테스, 풀라톤과 함께, 자주 「西洋」最大의 哲學者라고 보여져 또 그 多方面에 걸치는 自然硏究의 實績으로부터 「萬學의 先祖」라고도 불린다. 이스람哲學이나 中世스콜라學에 多大한 影響을 주었다. 또 아렉산트로스大王家庭敎師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름의 由來는 古典希臘語의"aristos"(最高의 것)와"telos"(目的)로부터.

生涯Edit

아리스토텔레스는 紀元前 384年, 마케도니아王國스타게이라로 태어났다. 父親은 마케도니아王의 大醫인 니코마코스. 軍隊에 入隊, 그 後 除隊해 約 行商人에게, 그리고 17歲 때 아테네에 있는 풀라톤이 主催하는 學院 아카데메이아에 入門해, 거기서 20年間 學生으로서 배워, 그 後 아카데메이아의 敎師로서 後進의 指導에 該當했다. 그리고 紀元前 347年에 풀라톤이 죽을 때까지 아카데메이아에 머물었다. 紀元前 347年, 마케도니아王 피립포스 2世의 招聘에 依해, 王子 아렉산트로스( 後의 아렉산트로스大王)의 家庭敎師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辯論方法, 文學, 科學, 醫學, 그리고 哲學을 가르쳤다. 紀元前 335年, 王子가 卽位하면, 아테네로 돌아와, 스스로의 學院 류케이온을 열었다. 弟子들과는 學院의 回廊(페리파트스)을 逍遙하면서 論議를 주고 받았기 때문에, 그의 學派는 逍遙學派(페리파트스學派)로 불렸다. 아렉산트로스大王의 死後, 아테네에서는 마케도니아人에 對한 迫害가 일어났기 때문에, 紀元前 323年 外家의 故鄕인 카르키스에 몸을 依支했다. 그러나 거기서 病에 쓰러져(或은 미나리과의 2年初를 부추겼다고도), 紀元前 322年에 死亡했다.

思想Edit

아리스토텔레스에 依한 記錄은 元來는 550卷程度 있었다고도 되지만, 그 中 現存하고 있는 것은 大略 3分의 1이다. 大部分이 講義를 爲한 노트 或은 自身用으로 혀 모아 둔 硏究노트이며, 公開를 想定하지 않았기 때문에 簡潔한 文體이다. 여러가지 經緯를 거치고, 로드스섬의 안드로니코스의 손에 건너, 紀元前 30年무렵에 整理 編輯되었다. 그것이 現在 「아리스토텔레스全集」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아 있는 記述은 아리스토텔레스가 意圖한 것과 다를 可能性이 있다. Cicero等의 證言에 依하면, 스승 풀라톤 같이, 아리스토텔레스도 몇 個인가 對話篇을 쓴 것 같지만 모두 殘存하고 있지 않다. 아리스테레스의 學問體系는, 「論理學」을 모든 學問成果를 손에 넣기 爲한 「道具」(organon)이다고 한 다음, 「理論」(테오-리어), 「實踐」(프라크시스), 「制作」(포이에이시스)에 3 分해, 理論學을 「自然學」, 「形而上學」, 實踐學을 「政治學」, 「倫理學」, 制作學을 「詩學」으로 分類했다.

論理學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풀라톤은, 對話에 依해서 眞實을 追求해 나가는 辨證論을 哲學의 唯一한 方法論으로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經驗的思想을 바탕으로 演繹的으로 眞實을 이끌어내는 分析論을 重視했다. 이러한 手法은 論理學으로서 三段論法等의 形態로 體系化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死後, 그의 論理學의 成果는 「오르가논」(Organon) 6卷으로서 集大成되어 이것을 바탕으로 中世의 學徒가 論理學의 硏究를 實施했다.

自然學(第2 哲學)

아리스토텔레스에 依한 自然學에 關한 論述은 物理學, 天文學, 氣象學, 動物學, 植物學等 多方面에 건넌다. 풀라톤은 이데아가 眞正한 實在(實在形相說)이다고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感覺으로 把握할 수 있어 形相이 質料와 不可分에 結合된 個體가 基本的인 實在(個體形相說)이다고 했다. 多樣한 物體의 特性을 決定짓고 있는 것은 「溫」과「冷」, 「乾」과「濕」의 對立하는 性質의 編成이며, 이러한 基礎에는 불・空氣・・흙의 4 元素를 想定하고 있다. 이것은 엔페드크레스의 4 元素論을 基礎로 하고 있지만, 보다 現實, 感覺에 起因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宇宙論은, 同心圓狀의 階層構造로서 論해지고 있다. 世界의 中心으로 地球가 있어, 그 外側에 , 水星, 金星, 太陽, 그 外의 惑星等이, 各各 各層을 構成해 있다. 이러한 天體는, 前述의 4 元素와는 다른 完全元素인 第5 元素 「아이테이르(에테르)」로부터 된다. 그리고, 「아이테이르」로부터 되기 때문에, 이러한 天體는 天球上을 永遠히 圓運動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最外層에는 「不動의 動者」인 世界全體의 「第1動者」가 存在해, 모든 運動의 窮極의 原因이다고 했다. 이븐・스나等 中世의 이슬람哲學者・神學者나 토마스・아크나스等 中世의 基督敎 神學者는, 이 「第1動者」야말로 「神」이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自然學硏究 中에서, 가장 顯著한 成果를 올리고 있는 것이 生物學, 特히 動物學의 硏究이다. 그 硏究의 特徵은, 系統的이고 網羅的인 經驗事實의 收集이다. 數百種에 걸치는 生物을 仔細하게 觀察해, 많은 種의 解剖도 直接하고 있다. 特히 海洋에 사는 生物의 記述은 詳細하다. 또 닭의 受精卵에 구멍을 뚫어 發生의 過程을 仔細하게 觀察하고 있다. 生物은 모두, 프슈케이(希臘語: ψυχη, 韓譯에서는 靈魂으로 한다)를 가져, 이것에 依해서 無生物과 區別된다고 했다. 이 때의, 프슈케이는, 生物의 形相이며( 「페리・프슈케이스」 第2 卷第 1章), 榮養攝取能力, 感覺能力, 運動能力, 思考能力에 依해서 規定된다( 「페리・프슈케이스」 第2 卷第 2章). 또 感覺과 運動 能力을 가지는 것을 動物, 갖지 않는 것을 植物과 2分하는 生物의 分類法을 提示하고 있다(다만 「動物雜誌」 第6 卷第 1章에서는, 植物과 動物의 中間에 있는 生物을 示唆하고 있다). 한層 더 人間은 理性(作用하는 理性(누스・포이에이티콘), 受動理性(누스・파테이티콘)) 을 가지는 것으로 다른 動物과는 區別된다, 로 하고 있다.

形而上學(第1 哲學)

原因에 對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플라톤의 이데아論을 繼承하면서도, 이데아가 個體로부터 멀어져 實在한다고 생각한 것을 批判해, 스승의 이데아와 區別해 에이드스(形相)와 휴레이(質料)의 槪念을 主唱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世界에 發生하는 現象에는 「質料因」과「形相因」이 있다고 하여, 이것을 나누어 후자를 한層 더 「動力因(作用因)」, 「形相因」, 「目的因」의 3個로 나누어 형편 4個의 原因(아이티아 aitia)이 있다고 한(4 原因說)( 「形而上學」Α卷 「自然學」 第2 卷 第3章等 ). 事物이 무엇으로 되어 있을지가 「質料(hyle) 因」, 그것의 實體이며 本質인 것이 「形相(eidos) 因」, 運動이나 變化를 일으키는 元始(arche)는 「動力(kneseos) 因」, 그리고 그것이 目標로 하고 있는 終局(telos)이 「目的(hou heneka) 因」이다. 存在者를 動態的으로 보았을 때, 潛在的으로는 可能한 것이 素材로서의 可能態이며, 그것과 벌써 生成한 것으로 思考가 具體化한 現實態를 區別했다. 모든 것이 可能態로부터 現實態에의 生成中에 있어, 質料를 가지지 않는 純粹 形相으로서 最高의 現實性을 갖춘 것은 「神」(不動의 動者)로 불린다.

範疇論

아리스토텔레스는, 述語(A는 B이다고 할 때의 B에 該當한다)의 種類를, 範疇로서 아래와 같이 區分한다. 卽 「實體」 「性質」 「量」 「關契」 「能動」 「受動」 「場所」 「時間」 「姿勢」 「所有」( 「카테고리論」 第4章). 여기서 말하는 「實體」는 普遍자이며 種이나 種類를 나타내 述語라고 해도 利用된다(第2 實體). 이것에 對해서, 述語로서는 利用되지 않는 氣體로서의 第1實體가 있어, 形相과 質料의 兩者로부터 되는 個體가 이것에 對應한다.

倫理學 아리스토텔레스에 依하면, 人間의 營爲에는 모두 目的이 있어, 그러한 目的의 最上位에는, 그것 自身이 目的인 「最高善」이 있다고 했다. 人間에게 있어서 最高善과는 幸福, 그것도 卓越性(아레테이)에 있어서의 活動이 가져오는 滿足이다. 幸福하다고는 快樂을 얻는 것 만이 아니고, 政治를 實踐해, 또는 人間의 靈魂의 固有의 形相인 理性을 發展시키는 것이 人間의 幸福하다라고 말했다(幸福主義). 또, 理性的으로 살기 爲해서는, 中庸을 지키는 것이 重要하다라고도 말했다. 中庸에 該當하는 것은, 恐怖와 泰然에 關해서는 勇敢, 快樂과 苦痛에 關해서는 節制, 災禍에 關해서는 寬厚와 豪華(豪氣), 名譽에 關해서는 矜持, 憤怒에 關해서는 溫和, 交際에 關해서는 親愛와 眞實과 機智. 다만 羞恥는 情念이어도 德이 아니고, 羞恥는 假言的으로 만이 좋은 것이며, 德에 對해 보기 흉한 行爲 그 自體가 容恕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各各에 어울리는 몫을 주는 配分的定義(幾何學的比例)와 損傷된 均衡을 恢復하기 爲한 裁判官的인 矯正的定義(算術的比例), 이것에 加勢해〈等價〉交換的定義를 區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倫理學은 단테・아리기에이리에도 큰 影響을 주었다. 단테는 「帝政論」에 있어 「니코마코스 倫理學」을 당기고 있어 「神曲」地獄篇에 있어서의 地獄의 階層構造도, 이 「倫理學」의 分類에 거는 있다. 또한 니코마코스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의 이름이며, 아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政治學

아리스토텔레스는 「政治學」을 著述했지만, 政治學을 倫理學의 延長線上에 생각했다. 그는 「人間은 政治的動物이다」라고 定義한다. 自足해 共同의 必要가 없는 것은 神이며, 共同할 수 없는 것은 野獸이다. 이것들과는 달라 人間은 어디까지나 社會的存在이다. 國家의 本然의 仔細는 王制, 貴族制, 포리티아, 그 逸脫로서의 僭主制, 寡頭制, 民主制로 區分된다. 王制는 아버지와 아들, 貴族制는 男便과 아내, 포리티아는 兄와 男同生의 關係에 그 原形을 가진다고 한다(니코마코스 倫理學). 아리스토텔레스 自身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小規模의 폴리스를 理想으로 했지만, 時代는 벌써 아렉산트로스大王이 登場해 폴리스를 넘은 世界國家의 形成으로 向하고 있었다.

文學

아리스토텔레스에 依하면, 藝術創作活動의 基本的原理는 模倣(미메이시스)이다. 文學言語를 利用한 模倣이며, 理想上의 模倣이 悲劇의 成立에는 必要不可缺하다. 作品 受容의 目的은 心情의 淨化로서의 카타르시스이며, 悲劇의 效果는 急轉(페리페테이아)과 人物再認識(아나그노리시스)과의 잘함과 못함에 依한다고 한다. 古典的脚本의 形態로 劇을 構成하는 方法의 三一致의 法則은 그의 「詩學」에 그 根據를 要求하고 있다.

後世에의 影響Edit

아리스토텔레스는 後世 「萬學의 先祖」라고 稱해질 것 듯이, 그가 가져온 知識體系는 網羅的이고, 當時로서는 完成度가 높고 偉大한 것이었다. 그의 多方面에 건너는 學說은, 13 世紀의 토마스・아크나스에 依한 基督敎神學에의 導入을 거치고, 中世유럽의 學者들로부터 支持를 받게 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諸說의 妥當한 部分뿐만이 아니라, 混入한 誤謬까지도가 無批判에 支持를 받게 되었다. 例를 들면, 現代의 物理學, 生物學과 關係되는 說에서는, 데모구리토스의 「原子論」 「가 知的活動의 中心」說에 對한, 아리스토텔레스의 「4 元素論」 「腦는 血液을 차게 하는 器官」說等도 信奉 繼續되게 되어, 中世에 이르기까지 이 學說에 理論을 主唱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한層 더 갈릴레이・Galilei는 太陽中心說(地動說)을 둘러싸고 生涯 아리스토텔레스 學派와 對立해, 結果的으로 裁判에까지 말려들어지게 되었다. 當時의 아리스토텔레스 學派는 望遠鏡을 「아리스토텔레스를 侮辱하는 惡魔의 道具」라고 看做 들여다 보는 것조차 拒絶했다고도 말해진다. 古代그리스에 있어 많이 科學을 進步시킨 아리스토텔레스의 說이, 後의 時代에는 反對로 늦추어 버렸다고 하는 짓궂은 事態를 부른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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