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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파렌條約(獨逸語: Westfalischer Friede英語: Peace of Westphalia)는, 1648年에 締結된 30年戰爭의 講和條約으로, 물스타條約오스나브룬크條約의 總稱이다. 英語 읽기로 웨스트 화리아條約이라고도 불린다. 近代에 있어서의 國際法發展의 端緖가 되어, 近代國際法의 元祖라고도 해야 할 條約이다. 이 條約에 依해서, 유럽에 있어 30年 繼續된 天主敎改新敎에 依한 宗敎戰爭은 終止符가 맞아 條約締結國은 相互의 領土를 尊重해 內政에의 干涉을 가까이 두는 것을 約束해, 새로운 유럽의 秩序가 形成되기에 이르렀다. 이 秩序를 베스트파렌體制라고도 한다.

內容Edit

1648年 10月 24日에, 유럽의 大部分의 大國이 參加하고, 現在의 獨逸노르트라인=베스트파렌州에 있는 물스타로 締結되었다(實際로는 오스나브룬크條約도 물스타로 締結되었다). 決定된 內容은 尨大하지만, 代表的인 것으로 해 以下의 일을 들 수 있다.

프랑스는, 아르자스地方과 로레이누地方의 메츠, 트르, 베르단을 獲得했다(神聖로마帝國으로부터의 離脫을 確認).

스웨덴은, 賠償金 500萬 라이히스타라, 포아폰메룬公位(폰메룬서반: 오델江河口, 베자江河口를 包含한다), 비스마르시, 브레멘公位(舊大司敎), 페르덴公位(舊主敎)等을 獲得했다.

스위스, 네델란드(네델랜트聯邦共和國)는, 獨立이 承認되었다(神聖로마帝國으로부터의 離脫을 確認).

브랑덴부루크 選帝侯는, 힌타폰메룬公位(폰메룬동반)를 獲得했다.

아우크스브르크의 和解의 內容을 再確認, 카르바派를 새롭게 容認했다.

神聖로마帝國內의 領邦主權外交權을 認定받았다.

한편 皇帝는, 法律의 制定, 戰爭, 講和, 同盟等에 對해서 帝國議會의 承認을 有利한 차면 안 되게 되었다. 議會 및 法院에 있어서의 天主敎과 改新敎의 同等權이 規定되었다.

바이에른公 마크시미리안1世는, 주어진 選帝侯位는 그대로 認定되었다. 또 프파르트 選帝侯 컬 1世르트비히는 選帝侯位를 새롭게 주어졌다. 舊프파르트領은 兩者에서 分割되어 바이에른 選帝侯는 오바프파르트를 獲得했다. 덧붙여 바이에른과 프파르트가 統合되었을 境遇에는 프파르트의 選帝侯位는 消滅하는 것으로 되었다. 이 結果, 프랑스는, 아르자스・로레이누에의 勢力擴大에 成功해, 스웨덴은 帝國議會에의 參加權을 얻었다. 한편, 獨逸에서는 領邦主權이 確立해, 領邦君主에 依한 聯合體로서의 獨逸이라고 하는 體制가 굳어졌다. 이 條約의 成立에 依해서, 敎皇・皇帝라고 하는 普遍的, 超國家的인 權力이 유럽을 單一의 것으로 해 統适하는 試圖는 事實上 斷念되었다. 이 이後, 對等한 主權을 가지는 諸國家가, 外國의 存在를 前提로 해서 勢力均等 안에서 國益을 둘러싸 合從連橫을 反復하는 國際秩序가 形成되었다. 이 條約에 依해서 規定된 國際秩序는 베스트파렌體制라고도 稱해진다.

影響Edit

大國은 勿論, 都市國家規模의 自由都市나 小國까지도가 獨立國으로서의 權威를 獲得했다. 30年戰爭은 天主敎派諸國, 特히 하프스브르크家의 敗北에 依해서 끝났다. 이 條約으로 改新敎(特히 카르바派)의 權利가 認定되어 帝國議會나 法院에 있어서의 天主敎과 改新敎의 同等權이 定해진 것, 또 天主敎의 皇帝가 紛爭을 調整하는 立場에 있는 것은 아닌 것이 確定한 것으로, 獨逸에서는 紛爭을 平和的으로 解決하는 길이 열렸다. 이 때문에 마지막 宗敎戰爭이라고 말해진다. 三十年戰爭은 國家間의 覇權戰爭이기도 했다. 그 面에서는, 이 條約으로 많은 利益을 얻은 것은 프랑스와 스웨덴이다. 프랑스王國은 天主敎이면서 戰勝國이 되었다. 하프스브르크家의 弱體化에 成功한 後, 아르자스를 얻은 프랑스는, 以後 라인江左岸에 支配領域의 擴大를 圖謀해, 侵略戰爭을 反復하게 된다. 그러나, 모두가 成功한 것은 아니다. 宰相 리슈류는, 國王 루이13世쾰른大司敎(選帝侯)에, 더욱은 神聖로마皇帝位에 앉히는 것을 노리고 있었다. 프랑스는 獲得한 量은 多大했지만 , 神聖로마皇帝라고 하는 質을 獲得하는 野望은 完遂할 수 없었다. 또 프랑스는, 아르자스나 로레이누의 一部를 獲得하면서, 帝國諸侯가 되는 것은 할 수 없었다. 프랑스에의 割讓은 後述하는 스웨덴에의 割讓의 境遇와 달라, 그 地域의 帝國으로부터의 離脫을 意味했던 것이다. 이것에 依해, 프랑스의 帝國議會・帝國쿠라이스에의 介入의 길은 닫혔다. 後에 루이14世는 再統一政策을 내걸어 라인江流域에 손을 뻗지만, 帝國쿠라이스로 結束한 諸候들은 一致해 프랑스勢力으로 向할 수 있었다. 스웨덴도 이 條約으로 발트海沿岸部에 領土를 獲得해, 그 一帶에 覇權을 樹立했다. 이 時代의 스웨덴은 발트諸國이라고도 稱해진다. 그 한편, 1644年親政을 開始한 크리스티나女王이 寬大한 姿勢로 大幅的인 讓步를 했기 때문에, 몫이 激減해 버렸다고도 말해진다. 그녀는 아버지 그스타후2世 아돌프의 理想(古고트主義)을 放廢해, 天主敎와 和解했다. 그녀의 理想은 全基督敎世界의 救濟였던 것이다. 그스타후2世 아돌프의 政策을 繼承해 스웨덴에 勝利를 가져온 宰相 오크센시르나는, 親政開始에 依해 事實上 失脚했다. 後에 그녀는 스웨덴의 改新敎敎會와 反目해, 王位를 반납해 天主敎에 改宗한다. 또 스웨덴에 있어 重要했던 것은, 프랑스와 完全히 反對로, 레이엔이라고 하는 形態로 領土가 주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卽, 스웨덴은 포아폰메룬, 브레멘, 페르덴을 얻었지만, 이것은 스웨덴王이 포아폰메룬公, 브레멘公, 페르덴公의 程度를 띠는 것을 意味했던 것이다. 스웨덴은 諸國議會에 자리를 가져, 오바자크센, 니다자크센, 니더 라인・베스트파렌의 3個의 帝國 쿠라이스에 자리를 차지했다. 이 結果, 이 3個의 帝國 쿠라이스는 스웨덴의 介入에 依해 機能不全에 빠졌지만, 그 한편으로 스웨덴은 諸國諸候로서 諸國이 戰爭을 實施하는 境遇에는 兵員과 軍資金의 供出이 義務 지워지게 되었다. 네델란드 侵略戰爭때, 1674年에 帝國議會가 對프랑스戰爭을 宣言하면, 스웨덴은 프랑스側에 서, 1675年에 神聖로마帝國과 戰爭을 始作하는 것이지만, 스웨덴은 諸國과 戰爭을 實施하면서도, 브레멘公으로서 니다자크센・쿠라이스에 定해진 兵員을 供出한다고 하는 奇妙한 立場에 處하게 되었다. 獨逸은, 帝國內의 領邦에 主權이 認定된 것에 依해, 300에 이르는 領邦國家의 分立이 確定했다. 또 皇帝의 權利는 顯著하게 制限되어 말하자면 諸候의 筆頭라고 하는 立場에 處하게 되었다. 이것에 依해, 하프스브르크家는 如前히 諸國의 最有力諸候로서 帝位를 獨占했지만, 帝國全體에의 影響力은 低下해, 스스로의 領地인 오스트리아大公國이나 보헤미아王國・헝가리王國等의 經營에 注力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하프스브르크 君主國). 그 한편, 帝國의 組織은 保存되어 그것들 領邦國家의 保存・平和的인 紛爭解決手段으로서 活用되게 되었다. 덴마크, 잉글랜드(퓨리턴革命의 중도)는 改新敎이면서 戰勝國에 參加할 수 없었다. 또, 天主敎의 스페인・하프스브르크家가 이 戰爭을 通해 勢力의 減退를 印象을 남겨 以後는 沒落의 一路를 더듬게 된다.

評價Edit

베스트파렌條約은 원부터 執權制가 弱하고, 統一된 「帝國」으로서의 기거지가 不安定했던 神聖로마帝國이, 明確하게 統一性을 잃은 事件이었다. 同條約은 「帝國의 死亡證明書」라고 불려 「神聖하지 않으면 로마도 아니고, 帝國 조차 아니다」라고 하는 보르테이르가 評價한 大公位時代와 함께, 獨逸地方의 非中央集權制를 象徵하는 것으로서 알려져 있다. 따라서 獨逸史의 專門家들이 「왜 獨逸은 스페인・프랑스에 比해, 地域統一이 크게 늦었는가」라고 하는 물음을 세웠을 때, 神聖로마帝國이 集權化에 失敗한 일이 第一에 提示된다. 그리고 베스트파렌條約과 大公位時代는 그 象徵的인 事件으로서 批判的으로 記述되는 것이 一般的이다. 事實, 皇帝權이 決定的으로 失墜한 일로 帝國의 集權化라고 하는 發想은 기각되어 바이에른 王國을 처음 各地方의 領邦國家가 獨自的으로 集權化를 進行시켜 갔다. 後에 統一을 達成한 獨逸帝國도, 領邦國家의 自治權을 完全하게 弊하는 일은 決코 할 수 없었다. 더해 나치스時代와 東西分斷을 거친 오늘의 獨逸도, 停滯로서 聯邦制를 採用하고 있다. 이것은 獨逸의 地方意識의 힘을 反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어디까지나 「프로이센에 依한 獨逸統一」을 肯定的으로 보았을 境遇, 더욱 말하면 프랑스型의 國家統一을 肯定的으로 보았을 境遇인 일을 留意할 必要가 있다. 神聖로마帝國이라고 하는 槪念은 集權的인 帝國은 아니어져도, 各領邦・地方國家의 意見을 모으는 調整機關으로서 役割을 完遂했다. 이것은 無數한 小國가로 나누어진 不安定한 政治狀態(바르카니제이션)면서, 발칸半島와 같이 유럽의 火藥庫는 되지 않았던 것이 證明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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