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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迅( 1881年 9月 25日- 1936年 10月 19日)은, 中國小說家, 飜譯家, 思想家. 本名은 周樹人으로, 글자는 豫才.筆名의 魯는 母親의 姓이라고 한다. 浙江省紹興市出身. 男同生에게 文學者・日本文化硏究者의 周作人, 生物學者의 周建人(1888-1984)이 있다. 代表作에 「阿Q正傳」, 「狂人日記」 等. 斷片作인 「狂人日記」는 舊來의 中國文學文語主體인 안으로 口語를 主體로 하는 點, 被害妄想狂의 心理를 實로 리얼하게 描寫하는 點에 對해 劃期的이었다. 덧붙여 魯迅의 中學校 때의 良友에게 진짜 迫害妄想患者가 存在해, 그를 觀察한 것이, 이 作品을 着想하는 힌트가 되었다고 한다.

人物・經歷Edit

牛込(우시고메)의 日本語學校・弘文學院에서 松本龜次郎(마츠모토 가메지로우)에 日本語를 배워, 1904年 9月부터 仙臺醫學專門學校(現在의 東北大學校醫科大學)에 留學한다. 그 사이 露日戰爭에 對해서, 授業中에 戰爭報道의 뉴스 映畵를 볼 機會가 있었다. 그 映畵에서는, 러시아軍 스파이의 中國人日本人에 依해서, 間諜(軍事 스파이)으로서 處刑되어 한층 더 同胞인 中國人이 處刑되는 님을 갈채 해 구경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 情景과 中國人의 反應을 報告, 中國人을 救하는 것은 醫學에 依한 治療는 아니고 文學에 依한 精神의 改造라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한다( 「喊聲을 지르는 일 自序」). 學校에 있어서의 細菌學의 슬라이드를 利用한 授業에 對하고, 當時의 時事 斷片이 남아 時間에 上映되어 그 中에 處刑의 場面이 있었다는 記述도 있다( 「藤野(후지노) 先生님」). 當時의 官立의 學校에서는 中國으로부터의 留學生의 入學은 淸나라 公使의 推薦狀으로 入學이 容恕되어, 魯迅은 無試驗으로 入學하고 있지만, 當時의 醫學專門學校는 卒業에까지 저어 대는 것은 지난의 記述였다. 當時 周에는 高額의 奬學金이 支給되고 있어 夏目漱石(나쓰메 소우세키) 等 日本의 小說의 讀書에 熱中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遊興에 빠지기도 해, 自身도 「當時 , 나는 全혀 힘써 工夫하지 않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2年度에 進級되면 學年試驗의 成績에 對해 同級生으로부터 試驗問題의 漏泄을 疑心하는 不當한 뜬 所聞이 있어, 이 嫌疑는 개였지만, 中國人留學生인 自身의 語學能力에의 差別感情을 느낀 것 같다. 그러한 狀況하로 中國人이 處刑되는 情景을 만났던 것이 進路를 다시 생각하는 契機를 준 것일 것이다. 1906年 3月에 仙臺醫專을 退學해, 東京에서의 生活을 始作하지만, 文筆은 막혀 있었다. 거기에 親舊 錢玄同 금심 달리 小說을 쓰도록 勸誘받고, 魯迅은 다음과 같이 對答하고 있다. 例를 들어 一室의 鐵房이 있고, 어디에도 窓이 없고, 아무래도 부술 수 할 수 없고, 안에 여럿 熟眠하고 있다고 하면, 오래 되지 않고 해 모두 悶死하겠지만, 그들은 昏睡로부터 死滅에 들어가 죽음의 悲哀를 느끼지 않는다. 現在 네가 큰 소리 주어 환비 일으키면, 눈이 깨어 걸린 몇 사람은 놀라 설 것이다가, 이 不幸한 少數者는 救해 返還 나름이 없는 臨終의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 너는 그런데도 그들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것은 當時의 故國의 社會를 絶對로 부술 수 없는 鐵房에, 사람들을 거기서 熟眠한 채로 窒息해 돌아가시려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령, 이루어지지 않는 所望을 안게 하는 小說等, 쓰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지, 라고 말한다. 그에 對한 금심 이는, 「일어난 사람이 몇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鐵房을 부수는 希望이 絶對 없다고는 斷言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魯迅은 이렇게 해 最初의 小說 「狂人 日記」를 썼다. ( 「喊聲을 지르는 일」自序) 歸國後는, 杭州市・紹興等을 거치고, 1912年, 南京에 있어 中華民國臨時政府敎育部員이 된다. 한층 더 政府의 移轉에 隨伴해 北京에 移徙. 1918年 雜誌 「新靑年」에 「狂人日記」를 發表한다. 以來, 「魯迅」 및 그 外 많은 筆名을 利用해 文筆活動을 本格化했다. 또, 北京大學校等에서 非常勤講師로서 中國小說史의 講義를 擔當했다. 中國의 傳統的 文學觀에 對해서는, 小說은 歷史나 詩와 글에 比해 一段 낮은 것이라고 보여져 硏究에 適合하지 않다고 여겨져 왔지만, 魯迅은 일찍부터 흩어 없어짐 하고 있던 小說의 短篇을 모으는 等 實證的인 基礎作業을 進行시키고 있었다. 그 蓄積에 依據해 神話 傳說로부터 淸末까지의 小說史를 論한 것이 「中國小說史略」(1924年)이다. 中國 最初의 小說史이며, 오늘이라도 이 分野를 말할 때의 必讀書가 되고 있다.

魯迅의 言語觀Edit

魯迅의 作品으로 보여지는 特徵의 하나로서 歐美語 特히 英語文法을 덧쓴, 本來의 中國語(現代中國語의 口語)에는 없는 어법이 있다. 그는 中國語가 文法的인 精密함에 걸고 있다고 하는 發想에 매달려지고 있어 歐美語는 文法이 精密해서 思考도 理性的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魯迅과 仙臺Edit

魯迅의 留學時代의 해부학 노트. 藤野嚴九郎(후지노 엄쿠로우)의 添削이 써져 있다 紹興市에서 仙臺市로 보내진 魯迅像(仙臺市博物館) 仙臺在住時代의 魯迅을 그린 作品에 太宰治(다자이 오사무)의 「惜別」이 있다. 이 「惜別」이라고 하는 말은, 仙臺在住時代에, 魯迅에 個別添削을 下賜하는 等 무엇인가 配慮하고 있던 恩師, 藤野嚴九郎가 마지막에 魯迅에 건네 준 寫眞의 뒤에 쓴 말. 그 藤野嚴九郎와의 關係는, 小說 「藤野先生님」에게 以下와 같이 그려져 있다. "「 나의 講義, 空冊을 받아 들일 수 있습니까?」라고 그는 묻었다. 「어떻게든」 「보여 봐」 나는 筆記한 空冊을 냈다. 그는 받고, 하루 이틀 해 돌려주었다. 그리고, 向後는 每週 가져와 보일 것 같이 말했다. 가지고 돌아가 열어 보고, 나는 놀랐다. 同時에 어떤 種類의 困惑과 感激에 襲擊當했다. 나의 空冊을, 처음부터 끝까지, 全部 朱筆로 添削되어 있어, 많은 빠진 것을을 追加記入했을 뿐만이 아니라, 文法의 잘못까지 죄다 訂正되어 있었다. 이것이 그의 擔任의 骨相學, 血管學, 神經學의 授業 全部에 걸쳐서 繼續되었다. – 中略- 하지만, 왠지 나는, 只今도 자주 그를 생각해 낸다. 우리 스승으로 받드는 사람 속에서, 그는 가장 나를 感激시켜, 가장 나를 激勵해 준 혼자다. 나는 잘 생각한다. 그가 나에게 熱烈한 期待를 걸어 인내즈 잘 가르쳐 준 것, 그것은 작게 말하면 中國이기 때문에이다. 中國에 새로운 醫學이 태어나는 것을 期待했던 것이다. 크게 말하면 學術이기 때문에이다. 새로운 醫學이 中國에 傳해지는 것을 期待했던 것이다. 나의 눈에서 보고, 또 나의 마음에 對하고, 그는 偉大한 人格이다. 그 生命을 아는 사람이 좋아 적든. " 魯迅은, 1904年 9月부터 1906年 3月까지의 約 1年半 밖에 仙臺에 없었지만, 仙臺市나 東北大學校에서는, 여러가지 面에서 魯迅을 通한 交流를 中國과 가고 있다. 中國人에게 있어서는, 東北大學校片平캠퍼스에 있는 仙臺의 「階段敎室」이 觀光地가 되고 있어 1998年 11月 29日에는 江澤民中華人民共和國主席도 訪問하고 있다. 訪問한 中國人은, 魯迅이 언제나 앉아 있었다고 여겨지는 同敎室의 中央臺 前부터 3番째의 羽緞 近處로의 紀念撮影을 하고 있다. 그 外, 同캠퍼스내에 「魯迅先生님像」(1992年 10月 19 日設置), 仙臺城三之丸의 仙臺市博物館敷地內에 「魯迅의 碑」(1960年 12月 設置)과 「魯迅像」(2001年 設置)이 있다. 또, 「魯迅 이전의 집」이 片平캠퍼스 正門近處에 남아 있다. 2004년, 東北大學校은, 魯迅의 留學 100周年을 紀念하고, 같은 大學校에 因緣이 있는 中國要人에게 「東北大學校魯迅像」, 같은 大學校 大學院에 在籍하는 優秀한 中國으로부터의 留學生에게 「東北大學校 魯迅紀念奬勵賞」을 주었다. 다만, 여러가지 事情에 依해, 다음 해부터 各各 「東北大學校 藤野先生님像」과 「東北大學校 藤野 紀念奬勵賞」으로 名稱變更되었다. 東北大學校의 創立 100周年을 紀念하고, 魯迅과 藤野嚴九郎의 胸像이 仙臺市內의 캠퍼스에 設置되었다. 또, 2011年 7月 19日, 東北大學校史料館에 「魯迅紀念 展示室」이 設置되어 9月 28日에 오프닝 세레모니가 實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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