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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漢字 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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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오늘날 우리의 言語 生活에서 漢字의 問題는 매우 深刻한 課題로 다시 登場하고 있다. 그것은 한글의 專用을 施行한 지 半世紀에 達함에도 一般大衆이 가장 많이 接하는 新聞와 雜誌, 그리고 專門學術 書籍들이 如前히 漢字를 混用하고 있어, 大學를 나와도 新聞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 文盲 아닌 文盲者가 續出하고 있는 現象이다. 世界 어느 나라에 이러한 절름발이 敎育이 있단 말인가. 실로 通達할 일이 아닐 수 없다.

理論上으로는 한글의 專用은 充分한 妥當性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大多數의 國語學者들이 一部의 사람들을 除外하고는 한글의 專用에 對해 積極的으로 贊成은 하지 않더라도 동조 내지 傍觀하는 態度를 取해 왔다. 그러나 이제 半世紀가 지났음에도 그 成果가 없으면 거기 대한 原因와 實相을 深刻하게 再檢討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믿는다.

이것은 한마디로 한글의 專用이 成就되지 못했음을 뜻하는데 그것은 理想를 쫓는 나머지 傳統와 現實을 無視한 데서 말미암는 것이다.

言語 政策은 물론 理想을 追求하는 것이지마는 그 理想은 歷史的 背景과 慣習을 토대로 充分한 分析과 檢討가 이루어진 다음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理想은 現實과 乖離를 가져오고 말 것이다. 現在 우리의 言語 生活의 實相은 이 理想과 現實와 乖離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우리는 지난 半世紀 동안의 言語 政策을 反省하고 現在의 不合理한 現狀을 再檢討할 必要性을 느끼는 것이다.

言語 政策의 條件은 다른 分野의 政策과는 다르다. 言語生活의 主體는 言語 大衆이다. 아무리 훌륭한 政策이라도 大衆이 그것을 受用하지 않는다면 그 政策은 失敗하고 말 것이다. 즉 强要된 言語 政策은 生命을 가지지 못한다. 中國에 있어서는 隨 以來로 標準音의 制定를 目標로 韻書를 編纂해 왔고 그것은 또한 中國의 言語 政策에서 成功를 거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오늘날 歷代의 韻書 가운데 明의 共式 正韻만은 좋은 評價를 얻지 못했고, 그것이 中國語의 言語的 統一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共式正韻이 現實音를 떠나 理想音을 追求한 데서 말미암은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에 있어서도 東國正音은 우리 漢字 音의 標準化를 試圖한 最初의 韻書로서 그 體系는 理論的으로 完璧하고 빈틈이 없다. 그럼에도 그것이 一般의 呼應을 얻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記錄에서 볼 때 世宗 때는 물론이요, 成宗 때에 이르기까지도 朝廷에서 初學者에게 이 音을 敎育하도록 指示했음에도 큰 成果가 없었다. 이와 같은 受用하지 않는다면 失敗한다는 儼然한 事實을 말하는 것이다. 즉 言語政策은 民族的 合意를 바탕으로 해야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글 專用에 對한 論議는 甲午更張까지 遡及하나 具體的인 實踐의 段階에 들어간 것은 光復의 興奮이 아직 가시지 않는 1945年 12月 8日 美軍 政鐵에 의한 漢字 廢止와 橫書의 決定에서 비롯한다. 이때 우리는 充分한 연구 검토나 사전 준비도 없이 하는 한글의 전용이 곧 祖國 光復과 연결되고 그것이 國家 再建의 礎石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肯定的으로 평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文化史的으로 傳統와 慣習에 깊이 젖어 있던 言語生活의 實相와과 國民의 意識 水準은 그것을 受容할 만한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漢字의 廢止를 主張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決코 革命이 아니라고 하지마는 國民的 合意에 의하지 않고 一時에 變革을 試圖한 것이 革命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言語 政策의 變革은 政治的革命이상으로 중요한 民族的 課業으로서 그 천에 앞서 最小限의 國民的 合意를 이룰 때까지 說得하고 啓蒙하는 努力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新聞와 雜誌가 아직도 한글 轉用에 나아가지 못한 理由가 어디 있는가? 한글의 전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國民이 읽지 못하는 新聞을 만드는 것은 讀者를 무시한 독선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新聞은 社會의 公器이기는 하나 營利의 追求를 避할 수가 없다. 營利的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讀者의 確保이다. 大衆이 한글 전용을 원한다면 벌써 한글의 전용으로 나가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글의 專用을 實踐하지 못함은 아직도 國民이 國漢文 混用을 바라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國民이 아직도 漢字의 魅力에서 벗어나지 못함은 歷史的 背景과 傳統 意識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한글전용이 아무리 바람직한 理想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이 엄연한 事實을 외면 할 수가 없다. 이에 對한 再檢討가 요망된다.

한글의 專用은 漢字의 廢止가 前提된다. 漢字의 全面的인 廢止는 그에 앞선 制度的 장치와 意識의 變化등이 뒤따라야 한다. 여기 제한된 地面에서 全部 論議할 수는 없다. 한글의 專用은 항상 漢字 敎育의 廢止까지도 政策的 課題인 한글의 專用을 떠나서 깊이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여기서는 주로 漢字 敎育의 强化가 緊要한 現實的 課題임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Ⅱ.

1. 國語 敎育의 理念

漢字 使用의 廢止를 主張하는 사람들은 漢字 漢文의 敎育까지도 閉止해야 된다고 主張한다. 그러나 이러한 理論은 敎育의 基本原理와 國語 敎育의 理念에 비추어 首肯할 수가 없다. 우리가 한글의 專用이 理論的으로 바람직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漢字 漢文의 敎育에까지 擴大하는 것은 敎育의 目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漢字 漢文 敎育의 閉止를 主張하는 사람들은 國民學校時節에 그들이 漢字의 習字에 시달린 事實을 回想하고 漢字의 學習 때문에 結局 다른 學科目을 等閒視하게 되고 나아가 國語에 對한 興味를 잃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이와 反對되는 境遇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漢字의 習字에 熱中하다 보면 漢字에 魅力을 느끼게 되고 나아가 그것이 國語에 대한 興味를 북돋우게 될 것이다. 한글만 專用하기 때문에 國語는 쉽다는 생각에 젖어 아예 工夫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境遇도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大學 入試에서 英語 數學 같은 科目에는 熱中하면서 국어는 쉽다는 생각에서 그 半도 工夫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試驗 成績이 다른 科目보다 나은 것이 없다. 이러한 사정은 한글의 專用이 오히려 國語 輕視의 傾向을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敎育은 現在 義務 敎育이 中學校까지 나아가는 段階에 있으나 머지않아 高等學校까지 擴大될 것이다. 이것은 現代 社會에 있어서 이 段階까지가 國民 敎育의 基本 課題임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國民 敎育이 단순한 생활의 便宜를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國民 敎育은 實生活의 便宜를 爲해서만이 아니라 사람답게 산다는 것, 나아가 民族 文化에 對한 깊은 理解와 그것을 通해 새로운 文化의 창조에 기여함에 있을 것이다. 國民 敎育이 單純한 生活의 方便으로서만 必要한 것이라면 굳이 漢字를 익힐 必要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敎育이 人格의 陶治와 創造的 文化의 發展을 目標로 한다면 現在 當面한 生活의 方便보다는 傳統文化의 繼承 發展에 있다고 할 것이다. 漢字가 비록 外來 文字라고 하더라도 二千餘 年에 걸쳐 文化的 活動이 이루어졌고 그것을 通해 文化가 生成되어 왔기 때문에 傳統文化의 얼은 이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準備도 없이 갑자기 漢字 敎育을 廢止함으로써 여기에서 傳統文化의 斷絶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오늘날 戰後의 새 敎育을 받은 젊은 사람들은 우리의 倫理 規範을 理解하지 못하고 西歐의 物質 文化만을 동경하는 나머지 참다운 韓國의 精神, 東洋의 精神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昨今 많은 사람들이 社會 規範의 崩壞를 개탄하고 있으나, 그 責任의 一端이 傳統文化에 대한 敎育의 斷絶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생각한다. 東洋文化의 根幹은 倫理와 道德, 즉 人格의 陶治에 있다. 傳統的 倫理 規範을 20世紀의 高度 産業 社會에 그대로 適應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傳統文化에 대한 敎育을 斷絶시키고자 한다면 그에 앞서 그렇지 않고 時代에 副應할 수 있는 規範이 먼저 마련되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갑자기 傳統文化를 담은 그릇인 漢字와 漢文의 敎育을 中斷시킴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社會的 混亂을 가져온 것으로 생각된다. 文化에 대한 變革은 制度的變革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漸進的이어야 하는 것이다.

國民敎育의 敎科目에서 國語야말로 敎育의 目標, 民族 精神의 繼承, 創造的 文化의 啓發을 위한 核心 科目이다. 이것은 單純히 '말하기, 쓰기, 듣기, 읽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傳統文化에 對한 깊은 理解 위에서 뿌리를 박아야 참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漢字는 傳統文化를 담은 그릇이다. 漢字 漢文에 對한 基本 知識이 없이는 國語 敎育의 참다운 目的을 達成할 수 없을 것이다.

2. 傳統文化의 繼承과 漢字 漢文의 敎育앞에서 이미 言及한 바 있거니와 우리의 傳統的 文化遺産은 거의 漢文으로 記錄되어 있다. 이것의 正當한 繼承은 곧 文化遺産에 대한 正確한 利害를 바탕으로 함은 말할 必要도 없다.

漢字 敎育의 閉止를 主張하는 사람들은 굳이 原文에 接하지 않더라도 번역한 것으로 充分하다고 한다. 그것은 一理가 있는 이야기이다. 옛 古戰 가운데는 그 文章이 더러는 쉬운 것도 있지마는 대개는 엄청나게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漢文에 대한 여간한 造詣가 없이는 그것을 理解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이 손쉽게 古典에 접할 수 있는 것은 飜譯을 통하는 것이 가장 效果的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큰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가장 基本的인 問題인 이 古典들의 飜譯 事業이 이루어지기도 前에 漢字의 使用과 敎育을 廢止하는 데서 비롯했다. 그렇기 때문에 文化의 斷絶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모든 古典의 飜譯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우리는 民族 文化의 敎育이라는 立場에서 漢字 漢文의 敎育을 廢止해서는 안 된다. 그 理由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苦戰의 飜譯을 위한 學者의 養成이다.

둘째, 古典의 內包한 根本 예산을 理解하는 데 飜譯本은 原本에 미치지 못한다.

첫째 問題의 解決을 위해서는 大學에 漢文學科를 設置하여 장차 그것을 全擔할 學者를 養成하면 된다고 하나, 過去 數千年間에 걸쳐 이루어진 東洋 文化의 精髓를 漢文學科 出身의 몇 사람으로써 可能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科擧의 文化에도 文學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經學, 歷史, 哲學에서 算學, 地理, 道術에 이르기까지 廣範圍하게 集積되어 있다. 이것을 小數의 漢學者에 依해 全部 飜譯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떤 學問이든 歷史와 傳統이 없는 것이 없다. 東洋의 學問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쉽게 過去의 典籍에 접할 수 있어야 한다. 또 西洋의 學問을 하는 사람도 역시 東洋의 그것과의 比較에서 世界的인 學問의 基盤을 構築할 수 있다. 그러기 爲해서는 國民의 基礎 敎育의 段階에서부터 모든 사람은 장차 古典에 接할 수 있는 基本 敎育을 받아야 한다. 大學의 漢文學科에서만 漢學者를 養成하자는 것은 너무도 偏狹한 識見이다. 東洋의, 또는 우리의 傳統文化를 몇 사람의 엘리트에게 맡기라고 하는 것은 科擧에 漢文을 貴族의 獨占物로 생각했던 것과 同一한 발상이다. 傳統性, 歷史性에서 볼 때 우리의 漢文學은 國文學에 對立되는 槪念이 아니고 同一的인 것이다. 萬若 장차 漢文學의 繼承 發展이나 苦戰의 번역을 위한 것이라면 그 使命은 國文學者에게 주어져야 한다. 또 力士와 哲學 등은 마땅히 史學者나 哲學者에게 넘겨 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漢文學科를 따로 設置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은 國家的으로도 敎育의 浪費가 아닐 수 없다. 또 古典의 飜譯을 위해서 大學 4年 間에 80學點 程度의 修業을 했다 해서 漢學에 대한 깊은 造詣가 이루어진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적어도 國民 敎育의 段階에서부터 착실하게 그 기초를 다져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漢文學科는 國文學科에 統合됨이 마땅하다. 그것은 現在 漢文學科에 附屬된 敎授의 絶對 多數가 國文學科 出身이거나, 國文學을 專攻한 사람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國文學科도 이에 따라 傳統文化의 繼承이라는 次元에서 漢詩, 漢文學을 異端으로 取扱할 것이 아니라 國文學에 吸收해야 할 것이다.

둘째의 問題는 漢字의 表現的 機能과 關係를 가지고 있다. 一般的으로 文字는 音聲 言語를 表記하는 道具로 看做되고 있다. 그것은 틀림없는 事實이다. 그러나 表意 文字인 漢字는 단순히 音聲 言語를 表記하는 道具로서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機能을 수행한다. 漢字는 音聲 言語를 表記하는 외에 그 自體가 스스로 어떤 개념을 再倉調하는 機能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漢字가 가진 가장 큰 魅力이라 할 수 있다. 漢字는 1字가 한뜻을 나타내나, 우리는 일찍부터 이것을 2字 이상 결합시켜 새로운 語를 再構成해서 使用해 왔다. 이로써 無限大로 複合語·派生語 등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문제는 造語法에서 다루어지기는 하나, 이 複合語·派生語는 表音文字의 경우와는 성질이 다르다. 즉 漢字語는 語와 語의 結合이기 때문에 表象하는 槪念은 좀 더 多樣性을 띠게 된다. 漢字는 1字로써 많은 字意를 가지고 있다. 文脈에 따라 그 字意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多樣한 字意가 복합해서 이루는 語義는 더욱 多樣해진다. 그러므로 古典은 飜譯으로서는 作者의 참된 精神을 理解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한 것은 直接 原典을 통해서 참된 精神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일반이 그 表面的인 意味만 이해하려 한다면 飜譯으로도 可能하다. 예컨대 小說이라든가 歷史라든가 地理와 같은 것은 飜譯으로써 어느 程度는 可能할 것이다. 그러나 經學이라든가 詩나 文學에 이르러서는 번역은 原典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傳統文化에 對한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한다면 역시 原典에 접하는 것이 有利하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高等學校만 卒業하면 必要한 경우에 直接 古典을 대할 수 있을 정도의 漢字 漢文의 敎育을 해야 할 것이다. 國民은 누구나 自己가 원하는 것을 敎育받을 수 있는 權利가 있고 읽을 수 있는 權利가 있다. 그럼에도 政策的으로 國民 敎育의 段階에서 이것을 막아 버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3,漢字 漢文 敎育의 限界와 範圍

漢字 敎育의 廢止를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귀납된다.

첫째, 漢字는 字數가 너무 많고 字劃이 복잡하여 배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後漢 때의 許愼이 지은 '說文解字'(전 14권)는 漢字의 構造와 運用을 技術한 책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수록된 총 字數는 9,353자이다. 이것은 當時에 漢字를 集大成한 最古의 文獻이다. 여기에 수록된 字 외에도 그 뒤에 나온 자료들에 의하면 더 있었을 것이나 許愼은 이것만으로도 當代의 漢字를 網羅한 것으로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許愼은 여기에서 字類를 六書로 分類했는데 六書에서도 象形字와 指事字만이 基本字에 해당하고 會意字와 形成字는 이 基本字를 둘 이상 複合해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轉注字와 假借字가 있으나, 이는 앞의 넷 중에서 그 뜻이나 음을 빌려 轉用한 것으로 漢字의 形態와는 關係가 없다. 그런데 基本字에 속하는 象形과 指事는 전부 735字이며, 여기에 會意字 655字를 가산하더라도 不過 1,390字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會意字를 加算한 것은 複合字이기는 하나 字意와 字音의 면에서 基本字의 機能을 獨自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總 字劃 9,353字에서 1,390字를 減한 7,963字가 形成字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거의 85%에 해당한다. 그리고 '象形·指事·會意는 전부 14.8%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만약에 會意字를 除外하고 象形과 指事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것은 7.8%에 지나지 않는다. 漢子는 그 自體의 性格으로 말미암아 얼마든지 字數를 增價할 수 있다. 南宋 때 鄭樵가 지은 '通志六書略'에는 24,235字로 象形, 指事, 會意의 合計가 1,455字로 增加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說問解字'에 비해 88字가 增加했으나, 이 800字는 거의 會意字에 속하는 것으로 象形字와 指事字는 增加하지 않았다.

宋代의 代表的인 韻書로 꼽히는 '代宋 重修 廣韻'의 標目字도 20,194字로 '六書略'과 큰 차이가 없다. 淸代의 '康熙 字典'에는 46,216字로 엄청난 增加를 보이고 있으나, 이 숫자는 宋代의 集韻에 버금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미 쓰이지 않던 낡은 字를 총망라함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한 時代에 常用되던 漢字를 對象으로 한 것이 아니다. 宋代에는 廣韻·集韻과 함께 常用으로 編纂한 '禮部 韻略'이 있다. 이것은 처음에 8,829字를 수록했으나, 그 뒤 여러 版本이 나옴에 多少의 加減이 行해졌으나, 대체로 9,000字 內外이었다.

漢字의 字數가 많아서 배우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康熙字典'의 字數를 기준으로 5萬 字라고 하나. 이것은 漢字의 敎育을 지레 겁먹게 하기 위한 一種의 공갈이다. 이것은 古今의 漢字를 망라한 것으로 이것을 다 익히고 있는 사람도 없고 또 學習할 필요도 없다. 文字도 時代에 따라 차이가 없다. 時代에 따라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지금까지 쓰던 것이 뒷전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康熙字典'의 5萬 字는 國語 辭典의 語彙 項目과 같은 것이다. 한글을 전용한다 하더라도 이 語彙 項目과 같은 것이다. 한글을 전용한다 하더라도 이 語彙項目을 다 學習하지는 아니한다.

宋代의 '禮部韻略'은 科試用으로 쓰인 것이며,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많이 쓰인 것인데, 여기의 9,000字만 하면 거의 充足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敎育用 字書로는 '千字文, 類合, 訓蒙字會'가 代表的인 것이다. '千字文'은 이름 그대로 1,000字이다. '類合'은 單卷으로 된 類合과 上下 2권으로 된 '新增類合'이 있다. 前者는 1,518字이며 後者는 3,000字이다.(1)

'訓蒙字會'는 3,360字로 이 중에서는 가장 많다. 이들 字書는 漢字의 敎育을 위한 基本敎材로 字數가 1,000→1,518→3,000→3,360과 같이 漸次 增加하고 있으나, 基本 敎育의 範圍를 어디까지 할 것이냐에 따라 決定된 것이다. 위는 다음과 같은 두 段階의 敎育 B課程을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한다.

基礎 敎育 1,000~1,500 基本 敎育 3000~3,500 基礎 敎育은 漢字 敎育의 入門 段階이다. 이 段階는 現在의 國民 學校 水準을 뜻하는 것이다. 基本 敎育은 漢文을 理解할 수 있는 水準을 뜻하는 것으로 現在의 高等 學校의 敎育 水準에 해당한다.

우리는 學校의 敎育에서 이 정도의 敎育은 해야 한다. 現在 國民學校나 高等學校에서의 漢字 敎育은 이 水準에 못 미치고 있으나, 옛날의 우리 先人들이 學習한 것을 어렵다고 핑계 대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제 3.500字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자, '康熙字典'을 기준으로 한 六書別 字數의 比率은 象形 3.10%, 指事 0.44%, 會意 3,10%, 形成 90.4%, 假借 2.44%와 같다. 이 比率을 3,500字에 적용하면 象形106자, 指事 15자, 會意 108자, 形成 2,582자, 轉注 51자, 假借 85자가 된다. 여기에서 基本字가 121字에 지나지 않고 會意字를 加算하더라도 230字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漢字에서 가장 많은 字數를 차지하는 形成字는 會意字와 함께 複合字로서, 一字가 形符와 聲符의 두 조각으로 나누어졌고 그 形符는 뜻을, 聲符는 音을 指示한다. 이 聲符와 形符가 바로 基本字에 속하는 것으로 3,500字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230餘 字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漢字가 지닌 또 하나의 魅力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聲符의 音과 形符의 뜻만 理解하면 形成字의 音과 뜻도 自動的으로 理解하게 되는 것이다. 漢字의 子數가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先人들이 그것을 크게 苦痛스럽다고 느끼지 않은 것은 漢字에 대한 基本 敎育만 받으면 다른 字에 대한 類推가 어느 정도 可能했기 때문이다.

漢字는 字劃이 복잡하기 때문에 배우기가 어렵다고 한다. 물론 한글에 비하면 복잡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앞에서 言及한 바와 같이 漢字는 構成上 形成字가 絶對 多數를 차지하기 때문에 形成字를 構成하는 要素字 즉 基本字에 대한 基礎 知識만 가지면 類推 判斷으로써도 어느 정도의 理解가 可能한 것이다. 또 字劃이 복잡한 만큼 1字 1字가 分明한 어떤 槪念을 指示하기기 오히려 讀書上으로는 表音 文字보다 빠른 理解를 促進할 수도 있다. 그것은 字劃의 복잡성이 오히려 指示 槪念과 直結되어 있기 때문에 讀書의 能力을 向上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字劃이 복잡하다고 하나 基本字에 속하는 象形, 指示 등의 字는 그다지 복잡한 것이 아니다. 字劃이 복잡한 것은 會意字와 形成字인데, 이것은 뜻이나 音을 直觀的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漢字는 外國 文字이기 때문에 敎育할 必要가 없다는 것이다.

漢字는 發生的으로는 外國 文字임이 분명하다. 물론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한글이라는, 世界에서도 그 類例를 찾아보기 어려운 民族 固有의 文字가 있는데도 굳이 漢字의 使用이나 敎育을 하는 것은 民族의 自矜心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역시 두 가지의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漢字가 비록 中國의 文字이기는 하나 우리는 이미 二千 年에 걸쳐 이 文字를 사용해 왔다. 그 사용한 역사의 오래됨과 그것을 우리의 音韻體系에 적응시켜 사용해 온 점에 있어서 이미 外國의 文字라는 槪念을 벗어난 지 오래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漢字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固有의 文字와 같은 구실을 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文字를 막론하고 起源的으로 소급한다면 民族固有의 文字가 아닌 경우가 많다. 로마자를 쓰는 英·獨·佛도 역시 자기들의 固有 文字라고는 할 수 없다. 日本의 假名 文字가 역시 漢字를 簡略化하거나 草書化한 것으로 그들이 창제한 固有 文字가 아니다. 이와 같이 그 뿌리까지 캐어 올라간다면 한이 없는 것이다. 漢字도 또한 같다고 하겠다. 그 처음이 創頡에서 비롯한다고 하나 확실한 것은 殷代의 甲骨 文字에서 그 뒤에 나온 金石·篆字를 거쳐 漢字에 이른 것이다. 初期의 契文을 만든 사람이 꼭 中國人이라고 判斷할 수도 없다. 漢文은 中國의 文임이 분명하나 그 字만은 반드시 中國의 것이라 해서 함부로 배척할 것이 아니다. 우리가 二千 年 이상이나 이 文字를 통해서 文化를 이룩한 역사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外國의 文字이기 때문에 배격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排他的이요, 鎖國的이며 感情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漢字의 敎育은 한글의 專用化를 沮害하는 要素로 作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도 한글의 專用만을 생각한다면 理論的으로 옳은 말이다. 우리는 歷史에서 政策과 敎育의 機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글의 專用은 政策의 問題이며 漢字의 敎育은 敎育의 課題이다. 言語 政策은 다분히 實用性, 效率性, 統一性에 중점을 두는 데 대해 言語敎育은 좀더 높은 次元에서 實用性에 發展的 理想을 志向하고 效率性에 傳統性을 加算하며 劃一的 統一性보다는 多樣性을 追求한다. 그러므로 한글의 專用을 위해서 文化的 發展의 理想이나 傳統性과 多樣性을 無視하고 漢字의 敎育을 廢止한다는 것은 敎育을 政策의 侍女로 타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닌가, 言語 敎育이 文字 政策의 理念을 超脫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그 政策 때문에 必要로 하는 敎育의 理念을 具現하는 데 必要한 諸課題를 忘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글 專用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漢字의 敎育이 專用化의 促進에 장애가 됨은 물론이거니와, 그렇더라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國語 敎育이 本來의 目的에서 逸脫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한글의 專用과는 관계없이 전통 문화의 계승이라는 遠大한 理想에서 漢字의 敎育은 그대로 실시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4. 漢字 敎育에 있어서의 略字의 문제

漢字의 敎育을 주장하는 사람도 漢字의 字劃이 복잡하여 배우기 어렵다는 것을 是認하고 이에 대한 勞苦을 덜기 위해 可及的이면 略字를 많이 만들어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漢字 敎育의 根本趣旨와 어긋나는 것이다. 略字는 旣成의 字劃을 줄여 簡略化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 形態가 旣成의 것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새로운 漢字를 追究하는 結果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우리의 漢字 敎育의 第一次的인 目標는 傳統文化의 繼承이라는 큰 理念에서 出發한다 함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으나, 이 경우에 旣成의 字形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 이미 옛 先人들이 一部 漢字 가운데는 略字를 써 온 것이 있다. 그런 것은 古典의 理解를 위해서 必要하나,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字形을 만드는 것은 찬성할 수가 없다.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略字를 쓴다고 하나, 그럴 바에야 한글을 專用할 것이지 굳이 漢字를 敎育을 할 必要가 어디 있는가,

어렵기 때문에 敎育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敎育은 단순하고 쉬운 것만을 배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또 實用上 한글만으로도 충분한데 어려운 漢字를 敎育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한다. 敎育은 日常生活의 方便으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高等學校에서 微積分, 外國語를 배우는 것 이상으로 漢字 漢文의 敎育이 民族 敎育의 擴充이라는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으로 믿는다. 그러므로 어렵기 때문에 略字를 만들어 敎育한다는 것은 敎育의 手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略字를 꼭 필요로 하는 경우에서 첫째는 科擧의 傳統에 따라야 하고, 둘째로 略字도 漢字의 範疇에 속하는 것이므로 漢字의 構成法에서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現在 中國에서 利用되고 있는 簡化 方案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中國에서도 굳이 이러한 新字 비슷한 略字를 쓸 바에야 차라리 다른 表音 文字를 利用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다음에 그들의 簡化 方案을 살펴보기로 한다.(2)

1) 古字를 採用함: 從→ᄊ, 衆→众, 禮→礼, 無→无, 氣→气, 處→処

위에 보인 古字 가운데 ᄊ·众은 쓰이지 않은 지 오래이다. 이런 것을 새로 利用하는 것은 初步者는 '從·衆'과의 關係에서 또 다른 부담을 준다. 예컨대 일찍이 'ㅆ'을 바꾼 것은 '從'이 '池·彶·往·征·待·徑......'등과 相對的인 價値를 가지는 것이다. 漢字의 字數가 그렇게 많음에도 數千 年間 그 生命을 維持할 수 있었음은 이러한 相對的 價値에 따른 直觀的 判斷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ㅆ'으로 바꿈으로써 그러한 有效性이 消滅되고 마는 것이다.

2) 草書體를 楷書化함

이것도 앞의 理論이 그대로 적용된다.

3) 筆劃을 간단히 줄임: 魚→鱼, 單→单, 變→変, 沖→冲, 勞→労, 莊→庄, 燭→烛

이들의 거의 대다수는 전통으로 써 내려온 字形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魚의 '灬'를 'ᅳ'로 바꾼 것은 1)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이유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灬'과 'ᅳ'는 表記에 所要되는 時間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그 정도의 차이라면 거의 新字라 할 새 字形을 만들 이유가 어디 있는가.

4) 간단한 부호로 번체자 일부를 대신함: 觀→观, 戱→戏, 鄧→邓, 區→区, 歲→岁, 羅→罗, 劉→刘, 齊→齐

漢字는 字形을 構成하는 要所 그 自體가 漢字로서의 生命을 가진다. 이 構成 要素를 본디 表象하는 機能을 떠나서 變形하거나 交替해서는 안 된다. 本項에 있어서 '雚·虛·登'은 構成 要素로서의 機能이나 形態가 전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又'로 묶었다. 또 '戱'의 一部를 '夕'로 바꾸고 '羅'의 '維'를 '夕'으로 同一하게 하였다. '劉'의 와 '齊'의 를 '文'으로 묶었다. 이것은 단순히 字劃을 簡略化하는 데만 중점을 두고 漢字가 가진 本來의 特殊性을 完全히 무시해 버렸다. 이것은 略字가 아니라, 새로운 字를 目錄에 追加했다는 의미밖에는 없다.

5) 글자의 一部만 취함:習→勿, 顯→县, 務→务, 霧→雾, 條→条, 廣→广, 醫→医, 蟲→虫, 飛→飞

이들은 우리의 吏讀의 略字形과 비슷하다. 이 가운데 '条·广·医·虫'과 같은 것은 從前부터 써 온 것이다. 그러나 '習'에서 '勿'를 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習'은 '羽+白'이므로 최소한 그 構成 要所만은 살려야 할 것이다. '县'도 종래의 '県'만 못하다. '県'은 그래도 構成要所를 살렸기 때문이다.

6) 동음자로 바꿈

漢字 가운데는 音·義가 같으면서도 글자를 달리하는 것이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에도 實用의 面에서는 하나로 統一해도 무방하나 敎育의 面에서는 둘 다 學習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7) 聲旁을 간단한 동음자로 고침: 鍾→鈡, 遼→辽, 遷→迁, 郵→邮, 燈→灯, 階→阶, 運→运, 遠→远, 猶→犹, 藝→艺

이것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聲符는 表音的 機能을 부담하는데, 이 表音이 時代와 地方에 따라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 漢字 音을 기준으로 할 때 '重―由, 登―丁, 酋―尤'가 等價 音이 아니므로 略字에서 이 둘을 等價的으로 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상과 같이 漢字의 略字化는 實生活에 多少의 時間 節約의 效果는 있을지 모르나 敎育의 側面에서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敎育은 단순히 現實의 便宜를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傳統文化의 繼承이라는 좀더 높은 次元에서의 效果를 期待하기 때문이다.

5. 漢字語의 敎育에 있어서의 漢字와 한글의 차이

漢字의 使用과는 관계없이 우리는 日常生活에서 얼마나 많은 漢字語를 쓰고 있는가는 지금까지의 統計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큰사전'에 나타난 통계로는 52.11%, 국어 대사전(이희승 편)에서는 69.32%로 되어있다. 두 사전의 통계에 차이가 있으나, 이것은 語彙를 採錄하는 기준의 차이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고 사전의 통계는 語彙 項目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마는 실제 사용에 있어서는 漢字語에 대한 心理的 作用에서 個人差가 있다. 漢字語를 선호하는 사람은 表現上 위의 통계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평범한 경우에 있어서는 대체로 위의 통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漢字는 한 字 한 字가 自體의 意味를 가지나, 거의 大多數의 경우 두 字 이상의 복합형을 이루어 쓴다. 그렇기 때문에 漢字는 그 字數들의 順列組合에 의한 無限大의 語彙 項目을 만들 수 있어서 表現하고자 하는 槪念에 相應하는 어떤 語彙도 만들어 쓸 수 있다. 이것은 그만큼 造語力이 뛰어남을 뜻하는 것이다. 보통 文字는 音聲 音語를 전사하는 데만 그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言語學的므로도 文字는 音聲 言語를 전사하기 한 道具로 규정하고 있다. 表音 文字는 분명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漢字는 다르다. 漢字는 音聲 言語의 전사라는 機能 위에 새로운 造語에 의해 새로운 文化를 再創造하는 機能도 수행한다. 이 점이 漢字가 지닌 가장 큰 魅力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先人들이 남긴 哲學에서 漢字의 槪念化에 의해 展開된 理論의 啓發을 적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우리의 言語 中樞에서 知覺된 聽覺 映像은 抽象的이며 漠然한 것이다. 그것을 具體化시키는 것은 그것을 담는 그릇 즉 言語이다. 물이 그릇의 모양에 따라 달라지듯이 우리야 知覺도 語彙의 量이 豊富하면 豊富할수록 表現力은 한층 高揚된다. 國語 敎育의 一次的 目的이 여기에 있다고 하면 固有語에 의한 語彙의 啓發이 더 進展될 때까지 漢字語의 敎育은 不可避한 것이다.

漢字語는 한글로 表記했을 때보다는 漢字로 表記했을 때 學習上 理解가 빠르다. 이것을 이해하는 데는 林四郞의 '漢字 基底 語考'는 매우 興味있는 硏究로 생각된다.(3) 여기서 말하는 基底語란 漢字語에서 基底의 機能을 수행하는 것과 基底에 지니고 있는 意味를 뜻한다. 그는 基底語·基底 意味로서 다음과 같이 5種을 들었다.

A. 基底語가 明確하게 認識되는 것 B. 基底語에서 基底 意味로 移行하는 것 C. 基底 意味로 다룰 수 있는 것 D. 特別한 科程을 거쳐서 別個의 基底語를 獲得할 수 있는 것 E. 基底를 포착하기 어려운 것   A 는 漢字語에서 가장 많은 경향을 보여 주는 것이다.

國―國家·國會·國交·國際·國籍......

城―城郭·城內·城中......

打―打開·打聲·打算·打診·打電......

B도 比較的 豊富하다.

建―健全·健康·健脚·健在

速―速力·速記·速成·速達·速報

C의 例는 다음과 같다.

育―敎育·愛育·養育......

視―視覺·視界·視察·視野......

紙面 關係로 다 적을 수는 없으나, 이것은 漢字를 통한 語彙의 敎育에 聯想또는 喚起 作用을 일으킴으로써 처음 대하는 語彙도 字를 통해서 意味를 把握할 수 있는 效力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Ⅲ.

우리는 漢字 漢文의 敎育이 古典의 번역을 위한 번역사의 養成에 있는 것이 아니라 敎育 目的의 具顯를 위한 實踐的 課題로서 國民의 基礎 敎育의 段階에서부터 體系的으로 實施되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現在 形式的으로는 國民學校에서부터 漢字를 敎育하고 있으나, 그것으로는 不足하다. 적어도 國民學校에서는 어지간한 古典은 읽을 수 있는 단계까지 敎育해야 한다. 漢字 漢文의 敎育을 敎育의 浪費로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방식이다.

漢字가 한글에 비해 어려운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어렵다 해서 有用한 것임에도 敎育 對象에서 제외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漢字가 한글에 비해 어렵기 때문에 基礎 漢字의 習得의 단계에서는 더 敎育上 時間을 소요할 것이다. 그러나 基礎 漢字의 敎育을 받은 다음에는 言語의 구사 능력이나 이해의 면에 있어서 배우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따라서 高等學校를 졸업하는 시기에는 漢字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國語 敎育의 효과가 向上될 것으로 믿는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조사 연구가 있었으면 한다.

Ⅳ. 참고 문헌

南廣祐(1982), 國語 國字 論集, 一潮閣.

沈在箕(1982), 國語 語彙論, 集文堂.

兪昌均(1966), 東國 正音 硏究, 螢雪 出版社.

李庸周(1990), 文字 改革 懸案으로서의 漢字 廢止, 국어생활 제20호.

崔範勳(1976), 國語 語學 論考, 通文館.

최영애(1989), 中國 文字 改革, 국어생활 제17호.

최현배(1961), 한글갈, 정음사.

허웅(1976), 우리말과 글의 일을 위하여, 과학사.

藤堂明保(1969), 漢語と日本語, 東京, 秀英出版.

林田郞(1980), 漢字基底語考, 文藝言語硏究 第5號, 日本, 筑波大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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