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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弘道(1745年〈英祖 21年〉-沒年未詳)는 朝鮮後期의 畵家. 는 子能. 는 檀園外, 丹邱・西湖・高眠居士・輒酔翁等이 있다. 本貫은 金海. 朝鮮後期를 代表하는 畵家의 한 사람으로 있어, 金弘道(檀園)는 申潤福(蕙園)・張承業(吾園)과 함께 「三園」이라고 稱해지고 있다.

生涯Edit

漢城에 있는 中人의 家庭에서 태어나고 安山으로 자란다. 外家畵員(宮廷畵家)을 大部分 輩出하는 家系였다. 唐代의 名手와 謳歌해진 姜世晃에 劃을 배워, 그 推薦에 依해 圖畵書畵員으로서 出勤. 1773年에는 王世孫(後의 朝鮮正祖)의 肖像畵를 그리고 있다. 正祖가 卽位하면 重用되어 王族이나 王의 肖像畵를 그리거나 王命으로 名勝 金剛山等 各地에 派遣되거나 行次에 시중들고, 그 風景畵를 그리거나 龍玉寺佛畵를 그리거나 했다. 風俗畵를 많이 그리다가 남기고 있다. 또, 朴齊家의 「武藝圖譜通誌」에 揷畵를 그리거나 「松下猛虎圖」等의 鳥獸畵도 그렸다. 「씨름圖」가 有名하지만, 官吏에 發見되지 않게 兩班을 批判한 內容의 春畵輯 「雲雨圖帖( 「밤의 씨름圖」輯. 內一作 「桃樹下前戯圖」는, 申潤福도 模寫)」도 그렸다.

沒年은 確實치 않다. 病을 얻었다고 記錄된 1805年境에 잠겼다고 하는 說, 沒年은 1816年以後라고 보는 說이 있다.

作品Edit

山水畵人物畵花鳥畵에도 솜씨를 發揮했지만, 오늘 그 이름이 알려져 있는 것은, 「檀園風俗圖帖(風俗圖牒)」等, 當時의 畵家들이 所在로 하는 것이 드뭄 民衆의 日常生活을 그린 風俗畵에 依해서이다. 金弘道의 뒤에 繼續된 申潤福・金得臣과 함께 「朝鮮三大風俗畵家」라고 普通 稱해지는 일이 있다.

또, 西洋畵陰影技法을 朝鮮에서 재빨리 導入하는 試圖를 實施한 畵家의 한 名이라도 評價되고 있다.

影響Edit

韓國의 傳統文化나 朝鮮時代의 風俗이 說明될 때에 그 그림이 引用되는 것이 많다.

王에게 重用된 뛰어난 畵家면서 庶民生活에의 親密感을 담은 그림을 그린 것, 그 業績에 不明한 部分이 많은 것으로부터, 後年에 많은 傳承이 생겼다. 그 生涯를 所在로 한 小說드라마映畵도 많이 있어, 엔터테인먼트라고 해도 消費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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