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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葛亮(제갈량; 181年 陰曆 7月 23日 ~ 234年 陰曆 8月 28日)은 中國三國時代 蜀漢의 謨臣이다. 孔明이며, 別號는 臥龍 또는 伏龍. 後漢末 群雄인 劉備를 도와 蜀漢을 建國하는 帝業을 이루었다. 207年 東吳의 軍閥 孫權과의 聯合을 이끌어내 赤壁에서 當代最强의 軍閥이었던 曹操를 擊破하였고, 以後 荊州南部4郡을 발板으로 劉備의 翌天을 도왔다. 221年 劉備가 帝位에 오르자, 丞相에 就任하였고, 劉備 事後 劉禪을 輔助하여 蜀漢의 政治를 主張하였다. 227年부터 持續的인 北伐을 일으켜 8年 동안 5番에 걸쳐 魏나라의 雍·揚州地域을 攻略하였다. 234年 5次 北伐中 五丈原陣中에서 54歲의 나이로 兵士하였다. 中國歷史上 智略과 忠義의 戰略家로 많은 이들의 推仰을 받았다. 그가 北伐을 始作하면서 劉禪에게 올린 出師表는 現在까지 傳해 내려오며, 이를 보고 울지 않으면 忠臣이 아니라고 評하는 名門으로 꼽히고 있다.

生涯편집

諸葛亮의 生涯는 크게 荊州時節, 入蜀과 劉備가 죽기 前, 그리고 劉禪帝에 이르러 南征과 北伐을 할 時期로 나눌 수 있다.

出生 및 隆中時節편집

181年 瑯琊郡의 地方官이었던 諸葛珪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親兄은 諸葛謹이고, 親同生은 諸葛均이다. 15歲가 되기 前에 兩親을 여의語 한동안 伯父 諸葛玄이 禮裝에서 諸葛亮을 돌봤다. 諸葛玄이 죽자 荊州로 移住하였다. 그는 襄陽鄰近의 隆中이란 마을에서 學文과 農事로 消日했는데, 이 時期에 지었다는 梁父吟은 現在까지 傳하고 있다. 當時 荊州는 戰亂을 避해 온 名望 높은 文人들이 많았는데, 諸葛亮은 이들과 活發히 交流하였다. 이는 그가 襄陽地域의 有名한 文人이며 大富豪였던 黃承彦의 사위였다는 點이 一朝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 結果 20代中半의 나이에 在野의 賢人으로 相當한 名聲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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