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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中國의 代에 만들어져 代에 隆盛한, 俗曲에 맞추는 歌詞文學이다.

詞는 詩와 비슷한 운문으로, 唐中葉에 民間에서 發生해 宋代에 가장 繁盛했던 文學樣式이다. 民間歌謠의 歌詞에서 出發했기 때문에 長短이 一定치 않아 ‘長短句’라 고도 하며, 初期에는 歌唱할 수 있었던 近體詩의 變形이라고 여겨 ‘詩餘’라고 부르기도 했다. 詞는 音樂과 密接한 關係를 가지고 있다. 詞를 創作할 때 一定하게 定해진 樂譜인 詞調에 歌詞를 채워 넣는 方式으로 지어져서, 詞를 짓는 것을 두고 歌詞를 소리에 맞추어 메운다는 뜻의 ‘塡詞’, 혹은 ‘依聲’이라 했다. 詞는 詩와는 달리 音樂과 緊密한 關係였으므로 遊戲的性格이 매우 强했다. 따라서 그 內容도 술, 女色, 愛情, 희롱에 對한 것이 많았고, 敍情的이고 感傷的인 特性이 强해 깊고 纖細한 內面을 婉曲하고 含蓄的으로 表現하려는 傾向이 있었다. 처음에는 文士들에게 그리 歡迎받지 못한 장르였지만, 唐나라末葉에 이르러 文人들도 關心을 갖게 되었고, 宋代에는 空前의 繁榮을 누리게 되었다. 詞가 大量으로 創作됨에 따라 艶情的이고 個人的인 身世타령에서 벗어나 時局에 對한 慨歎이나 國家의 興亡盛世 等까지도 읊게 되어 점차 詩와 비슷한 性格을 띠게 되었다.

처음

唐나라 宮廷에 設置되었던 敎坊의 音曲을 利用한 것도 있었으나, 大部分은 民間人에 爲해 불리고 있던 俗曲에 맞추어서 만들어졌다. 中唐의 白居易劉禹錫에게 이미 詞의 作品이 있다. 그리고 詞의 文藝를 많이 만들어 一家를 이룬 것은 晩唐의 溫庭筠이다. 그는 初唐의 宰相 溫彦博의 子孫이라고 하지만, 放蕩生活을 하다가 끝내 進士에도 及第하지 못하고 花柳街의 寵兒로서 艶麗한 노래를 繼續 만들었다. 그의 詞는 主로 妓女의 요염함과 怨情을 노래했다. 以後의 詞의 文藝는 妓女에 얽힌 女性的文藝로써 性格化되었다.

發展[]

그 後 五代에서 宋에 걸쳐 詞는 전성을 보였다. 五代 前蜀의 宰相이 된 韋莊(836?~910)도 淸艶한 詞를 지었다. 詞의 文藝를 슬픈 情趣를 옮기는 文學으로 끌어올린 것은 南唐의 後主인 李煜이며, 北宋의 晏殊(991~1055), 晏幾道(晏殊의 아들, 生沒年 尾象) 等이다.

歐陽脩도 또한 溫雅한 詞를 지었다. 한편, 通俗歌曲으로 市民世界에 流行시킨 사람은 北宋의 柳永이다. 蘇軾은 只今까지 主로 遠征을 노래하는 女性的文藝로서 생각되고 있던 詞를 人間의 一般的인 心情을 表現하는 것으로까지 끌어올렸다. 蘇軾은 “詩를 가지고 詞를 만든다”고 評했으며 詞의 豪放派라고 稱해졌다. 蘇軾에 의해서 높여진 詞는 周邦彦(1056~1121), 李淸照, 辛棄疾, 姜夔(1155?~1221?), 吳文英(1200~1260) 等이 展開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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