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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羅는 濟州島古代부터 中世에 걸쳐 存在한 王國이다. 百濟, 統一新羅, 高麗에 內屬해, 15 世紀 처음 朝鮮에 完全倂合되었다. 耽毛羅, 屯羅等이라고도 表記된다. 모두"섬나라"를 意味한다.

歷史[]

耽羅의 起源에 對해서는 太古의 옛날, 高・梁・夫의 3 兄弟가 구멍으로부터 불기 始作해 왔다고 하는 三姓穴의 傳說도 있지만, 歷史的인 記錄으로서는 3 世紀의 中國의 史書 「三國志」東夷傳으로 보이는 州胡가 初見이며, 韓族과는 言語系統을 다른 것으로 하는 것이 通說이다(이것에는 異說도 있다).

三國史記」에서는 耽羅가 476年에 百濟의 文周王朝貢해, 498年에 百濟의 東城王에게 服屬하고 있을 것 듯이, 498年以後는 百濟에 朝貢하고 있었다. 그러나 660年 百濟가 唐나라・新羅聯合軍의 侵攻에 依해서 갑자기 滅亡하면, 耽羅는 大混亂에 빠졌다. 662年에는 新羅에 服屬했다고 보여지는 것이, 이 때 唐나라로부터 歸國하는 日本遣唐使船이 偶然히 耽羅에 寄港해, 唐軍의 侵攻을 무서워하는 耽羅는 當分間 日本에 朝貢을 繼續 보냈다고 하는 記錄이 「日本書紀」에 있다. 또, 繼體天皇 2年(508年) 「南海中耽羅人初通百濟國」으로 있어, 日本書紀에서는, 百濟와 처음으로 通한 것이 508年으로 記錄되고 있다.

當時의 記錄에 依하면, 耽羅에는 이미 별主 또는 星主, 王子 또는 星子, 徒內로 불리는 支配者가 存在하고 있었다. 이러한 稱號는 新羅 文武王이 주었다고 하는 文獻도 있다. 어쨌든, 耽羅支配者의 이러한 稱號는 後世까지 繼續되었다. 耽羅星主가 筆頭格으로, 이것을 王으로 한다.

935年에 新羅가 滅亡하면, 耽羅는 當分間 獨立했지만, 938年에는 高麗에 服屬했다. 高麗는 1105年에 耽羅郡을 設置해, 1121年에는 濟州라고 改稱했지만, 별主, 王者等 舊來의 支配者의 稱號는 認定하고 있었다. 元來는 高麗를 制壓하면 1274年에 耽羅를 直轄地로 하고 牧場을 두었지만, 1294年에 高麗에 돌려주었다 . 高麗에 代身한 朝鮮은, 1404年에 별主, 王子等의 傳統있는 稱號를 廢止해, 1416年에는 濟州牧使 아래에 縣도 設置했다. 이것보다 陸地와 같은 地方支配體制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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