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絶對王政(英語: absolute monarchism)은, 王이 絶對的인 權力을 行使하는 政治의 形態를 가리킨다. 絶對主義絶對君主制라고도 불린다. 이 記事에서는, 16 世紀부터 17 世紀의 유럽에 있어서의 「絶對王政」에 對해 말한다. 政體로서의 「絶對王政」에 對해서는 「絶對君主制」를 參照하는 것.

槪要편집

歷史的으로, 中世까지의 諸侯貴族, 敎會의 權力이 地方에 亂立해, 分權的인 狀態로부터 王이 强大한 權力을 가져 中央集權化를 圖謀해, 中央官僚와 常備軍(近衛兵)에 依해서 國家統一을 完遂했던 時代에 特徵的인 政治形態를 가리킨다. 일찌기, 마르크스主義에 對하고는 封建主義社會로부터 資本主義社會에의 過渡期에 나타났다고 자리 매김되어 近年은 社團國家等의 槪念을 通해서 說明되는 것이 많다.

歷史편집

一般的으로 「絶對王政期」 「絶對王政의 時代」란, 西유럽에 있어서의 市民革命 以前의 時代를 가리킨다. 大體로 16 世紀부터 17 世紀에 걸쳐 到來해, 잉글랜드테다朝, 프랑스부르봉朝, 스웨덴바사王朝프파르트王朝等을 들 수 있다. 特히, 부르봉朝가 그 典型例로 여겨져 1615年부터 1789年까지, 身分制議會三部會가 召集되지 않았다. 이것은 諸侯의 權力의 低下와 國王의 權力이 모든 權力에 優先한 것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프랑스王 루이 14世가 諫言하는 家臣에게 말한 「짐은 國家든지(L'Etat, c'est moi)」라고 하는 말( 「그런 일을 하시고는 國家와 百姓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에 對해서 「百姓만으로 좋다」 이어 말했다고 여겨진다)은, 이 狀況을 端的으로 表現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다만, 實際로는 王權이 絶對인 것은 아니다. 王權의 絶對性은, 貴族・길드等 特權을 가지는 諸團體(社團)가 統治에 協力하는 것으로 成立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恒常 溫順한 協力者는 아니었다. 例를 들면, 잉글랜드에서는 마그나・카르타에 根據하는 議會의 課稅承認權을 防牌로서 財政的인 制約에 繼續 골치를 썩여 (다만, 議會側의 抵抗도 當初는 保守的인 封建主義的인 見地로부터의 것이 主 ), 또 프랑스에서 免稅特權의 剝奪을 루이 16世가 圖謀했을 때에는, 그들은 다시 身分制議會인 三部會를 開催해, 스스로의 特權擁護를 爲해서 王에게 反撥하고 있다. 이것이, 社團의 解體를 가져오는 프랑스革命으로 連結된 것은 짓궂었다. 當初, 이 「絶對王政」을 正當化하는, 明文化된 法이 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後에 王權神授說이나 自然法思想에 根據하는 社會契約論等이 나타나 絶對王政을 肯定化하는 試圖가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自然法思想에 根據하는 社會契約論에서는, 王權의 絶對性에 反對意見을 내세우는 존・라크라고 하는 思想家도 나타나 市民革命을 擁護하는 論理的基盤이 만들어지게도 된다. 또, 17 世紀부터 18 世紀에 걸쳐 엘베江以東에서도, 絶對主義國家를 樹立한 西歐에의 對抗上으로부터 「絶對王政의 時代」가 始作되어, 當時 西歐에서 流行하고 있던 啓蒙主義思想과 結合되고, 啓蒙專制君主가 出現했다. Pruisen 國王 프리드리히 2世가 말했다고 여겨지는 「國王은 國家第一의 下人」이라고 하는 말은, 人權思想이나 市民權思想이 發達한 啓蒙主義와 結合된 啓蒙專制君主像을 端的으로 나타내고 있다. 「絶對王政」의 時代에 있어서, 國王은 當時의 身分制社會의 骨組에 묶이면서도, 諸侯의 第一人者라고 하는 立場으로부터 脫却하고, 각 特權團體를 따르게 하는 것에 成功했다. 또, 絶對王政을 通한 中央集權國家의 形成은, 後에 繼續되는 國民國家의 形成에 크게 寄與했다.

絶對王政의 潰滅편집

17 世紀에 있어서의 地球全體의 寒冷化나, 30年戰爭으로 代表되는 殘酷한 戰亂 中에서, 人間의 理性에 絶對的인 信賴를 두어, 이러한 危機를 克服하려고 할 생각이 생겼다. 이러한 狀況下로 啓蒙主義思想은 隆盛으로 向해, 人權思想, 市民權思想이 發達하는 것과 同時에, 絶對王政의 論據인 王權神授說에 嚴格한 批判이 더해졌다. 또, 18 世紀까지 王權의 統制가 닿지 않는 살롱, 카페라고 한 「公共」空間이 태어나 權力의 由來를 神이 아니고 「與論」에 要求해 王政의 打倒를 圖謀하는 革命思想이 流布하며 갔다. 그리고, 市民革命이 勃發하면 絶對王政은 무너져 그 後에 到來하는 近代市民社會에 對해 國民國家의 形成이 進行되었다. 英國에 있어서는 淸敎徒革命, 名譽革命을 거친 後, 國王이 權利의 章典을 承認해 立憲君主制로 移行한 것에 依해서 絶對王政의 時代는 끝났다. 프랑스에 있어서는, 프랑스革命에 對해 國王이 斬首되어 政體는 共和政으로 移行했다. 그 다음은 帝政을 거쳐 王政復古에 依해 國王이 復活하지만, 絶對王政을 復活시키려고 企劃한 國王의 意圖는, 1830年의 프랑스 7月革命에 依해서 打倒해졌다.

思想史(絶對王政의 擁護)편집

王權神授說편집

仔細한 것은 「王權神授說」을 參照

프랑스의 神學잭=페니뉴・보슈에는 王權神授說을 主唱해 國王에 依한 支配權은, 國王의 先祖가 神에 依해서 下賜할 수 있던 것이기 때문에, 國王이 失政을 實施했을 境遇도 그 責任이 追窮當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 잉글랜드에서도 로버트・피르마가 「父權論(Patriarcha)」에 두어 같은 理論을 主唱했다.

社會契約論에 根據하는 絶對王政의 擁護편집

토마스・홉브즈는, 社會契約論을 利用해 淸敎徒革命이 終了한 後의 王政復古後에 있어서의 絶對王政을 擁護했다. 著書 「리바이아산」에 對하고, 人間이 自然權을 各自 생각대로 行使하는 狀態를 「萬人의 萬人에 依한 鬪爭」이다고 해, 그 混亂을 避하기 爲해서는 自然權을 國家(=리바이아산)에 委讓할 必要가 있다고 主張했다.

硏究史편집

마르크스主義에 있어서의 絶對主義論편집

마르크스主義에 對해서는, 絶對主義는 封建社會와 市民社會의 過渡期에 出現한다고 說明된다. 封建社會에 있어서의 支配階級인 貴族이 沒落해, 市民社會의 擔當者인 브르죠와지가 勃興하는 가운데, 國王은 兩勢力의 調停者로서 絶對的인 權力을 樹立한다고 한다.

社團國家論편집

第二次世界大戰後, 「絶對主義」 「絶對王政」이라고 하는 槪念의 再檢討가 재촉당했다. 그 要因은, 戰間期에 出現한 파시즘勢力을 分析할 必要가 생긴 것에 依한다. 단지 絶對王政期의 王權이 絶對的이었다고 하는 것 만으로는, 파시즘 政權에 있어서의 權力者와의 差異化를 圖謀할 수 없기 때문에, 파시즘政權과 比較하면, 「絶對 王政」期의 王權에는 限界가 있었다고 하는 見解가 생겨 오는 것이다. 파시즘政權이, 大衆 미디어의 活用等을 通해서 國民 한사람 한사람을 捕捉한 것에 對해, 絶對王政下에서는 國家의 構成員 한사람 한사람에까지 國家權力의 支配가 미치지 않았었다. 이와 같이, 社團國家論에 있어서는, 王權의 「絶對性」에 疑問이 나타난다. 當時의 社會에 있어서는, 都市・길드・村落共同體等 많은 自律的인 團體가 存在하고 있어, 國王의 「絶對的」으로 보이는 權力은, 이러한 諸團體의 利權을 擁護하는 對象으로 해서 成立하고 있었다. 이러한 國家를 「社團國家」로서 把握해 이 主權國家의 第1 段階로서의 社團國家가, 市民革命의 時代를 거쳐 「國民國家」로 發展해 나간다고 說明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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