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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叔舟(1417年(太宗 17年) – 1475年(成宗 6年)) 는, 朝鮮王朝初期의 政治人. 는 泛翁. 는 希賢堂 或은 保閑齋. 諡號는 文忠. 本貫은 高靈.

經歷Edit

1439年(世宗 21年)에 文科에 合格해 官吏가 되어, 學問硏究所兼政策諮問機關인 集賢殿에 登用된다. 日本語, 中國語等 다른 나라의 言語도 能熟한가 접을 수 있는에 外交官으로서도 活躍해, 1443年(世宗 25年)에는 朝鮮通信使의 書信官으로서 日本으로 向해 갔다. 또, 한글의 創製나 「東國正韻」의 編纂에도 參加해, 義理의 할아버지의 尹會와 함께, 世宗大王의 重用을 받았다.

世宗의 死後의 1453年(端宗 4年), 首陽大君李瑈(後의 朝鮮世祖)에 依한 權力奪取(癸酉靖難)에 協力, 都承旨(王의 秘書室長)가 된다. 世祖가 卽位하면 大提學이 되었다. 1462年(世祖 8年)에는 朝鮮王朝의 最高官職인 領議政이 되었다. 世祖는 그를, 唐太宗을 侍中한 名臣・魏徵을 模倣했다고 한다.

젊은이 있어 朝鮮睿宗이 卽位하면 院相으로서 承政院에 들어가, 南怡의 謀叛事件으로 政敵을 排除. 繼續해 朝鮮成宗을 侍中들었다. 成宗의 命令을 받아 일찌기 室町幕府足利義敎將軍때에, 日本을 訪問한 經驗을 基本으로 「海東諸國記」를 著述해, 1471年(成宗 2年)에 刊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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