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歴史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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歴史學이란, 過去의 史料를 評價•檢證하는 過程을 通해 歴史的事實, 및 그러한 関連을 追求하는 學問이다.

槪要Edit

人間에게 있어서, 뭔가의 事物의 過程이나 經緯•와 暦을 알려고 하는 것은 反本能的인 行為이다. 그러므로에 過去에 関한 技術을 남기거나 혹은 過去를 알기 때문에 技術은 古代부터 存在하고 있었다(헤로드트스, 트키디데스, 司馬遷 等). 그렇지만, 學問으로서의 方法論을 確立시킨 近代的인 歴史學이 成立한 것은 比較的 새로운 時代의 일로이다. 具體的으로는 르네상스의 時代에 史料批判에 関한 技術의 體系化가 進行되어, 17 世紀以降에 古文書學으로서 成立했다.

古文書學者이기도 한 歴史家 레오포르트•폰•란케는, 古文書學의 史料批判法을 歴史研究에 對해 重要視하는 일로 實證主義的인 歴史學(実證史學)을 確立해, 歴史學을 科學의 域에 높였다. 「史實를 적을 뿐」이라고 한 란케의 實證史學은 유럽 史學界에 큰 影響을 주어 오늘의 歴史學의 基礎로 되어 있다. 하지만 란케의 手法은 事實探求에 厳正함을 付加한 뿐으로 文獻資料偏重이라고도 할 수 있는 風潮를 낳아, 後에 아날學派等에서 批判을 받는다. 그 때문에, 現在의 歴史學으로는 實證史學을 基礎로 하면서도, 文獻研究以外方法(會話, 傳承, 壁画, 現地調査, 地理學, 考古學等)도 歴史를 探求하는데 있어서 重要한 知見으로서 尊重되고 있어 漸次 人類學的인 性格을 가지고 있다.

過去를 敎訓으로서 받아들이는 態度는 옛부터 볼 수 있는 것이다. 例를 들면, 닛코로•마캐베리의「리비우스論」은 이탈리아의 黄金時代인 古代로마의 共和制의 歴史를 되돌아 보는 것으로 未来에의 敎訓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그러나 過去를 安易하게 오늘의 基準으로 보는 것은 過去를 色眼鏡으로 보게 될 수도 있는 모아 두어 注意가 必要하다. 例를 들면, 오늘 戰爭이라고 되고 있지만, 以前에는 紛爭解決의 最終手段으로서 戰爭은 肯定되고 있었다. 自身의 時代의 價値觀이나 倫理觀機械的으로 過去에 適用해, 批判하는 것은, 자주 歴史의 實相을 誤信하게 될 수도 있다.

硏究方法Edit

歴史를 되돌아 보는 것은 人間의 主體的인 行為이며, 各者의 問題意識에 따라서 課題(테마)가 設定되어 研究를 한다. 自身이 살아 있는 社會에 對해서 全혀 어떤 問題意識도 가지고 있지 않은 人間에게는, 歴史에 對한 問題意識도 태어나지 말고 있을것이다. 이것은, 歴史研究가 主觀的인 物件으로 客觀性이 없다고 하는 意味는 아니다. 客觀的인 根拠를 나타내, 論理的인 考察을 實施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納得 시키는 研究가 要求된다. 通常, 歴史研究는 先人으로부터 繼承한 蓄積(研究者)이 있어, 先人의 實績을 根拠로 해 研究를 批判 혹은 深化•發展시키는 것이 歴史學의 目標가 된다.

史料批判Edit

歴史學에 있어 史料批判은 빠뜨릴 수 없는 作業이다. 史料批判과는 그 史料를 信頼할 수 있는 것인가, 信頼할 수 있다고 하여 어느 程度 信頼할 수 있는지를 確定하는 作業이다. 例를 들면 한 事件에 對해서, 史料 A와 史料 B가 矛盾되고 있는 境遇, 両쪽 모두의 史料의 性格을 생각해 어느 쪽이 올바른가 確定해 가는 作業이 包含된다. 史料 A가 事件으로부터 1年後의 第三者에 依한 전문이며, 史料 B는 當事者의 日記라고 하면, 一般的으로는 事件에 對해서(時間的•空間的으로) 가장 가까운 史料가 確實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當事者의 證言에는(意識的•無意識的인) 自己正當化가 包含되는 것도 많아, 반드시 眞實하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可能한 한 많은 史料를 모아 서로 批判・檢討를 더하는 것이 重要하다. 덧붙여 전문이어도, 그 事件에 對한 世上에서의 評價를 包含하고 있는 等, 史料로서 利用할 수 있는 境遇도 있다.

歴史書等 이미 編纂되고 있는 史料의 境遇는, 著述者의 立場에 依해 意圖的인 編纂이 더해지고 있는 境遇도 있다. 例를 들면 中國正史(二十四史)는 唐나라代以降, 國家에 依한 編纂이 되었기 때문에, 唐代의 王朝를 正當化 하기 依해서 先代의 王朝의 마지막 皇帝等이 實際以上으로 나쁘게 쓰여지는 傾向에 있다. 이러한 史料를 남긴 사람의 思想이나 信條, 政治的状況, 當時의 社會状況을 愼重하게 確定하는 것이 必要하다.

歷史觀Edit

歴史觀과는 上記의 方法論에 依해서 導出된 여러가지 歴史的事象의 関連性이나 構造를 考察할 뿐만 아니라 두고, 어떠한 要素를 重要視하고 있을까의 差異를 가리키는 用語다. 歴史的事象의 사이에 関連을 찾아내려고 하는 일은 歴史學에 있어서 重要한 일의 하나이지만, 그 때, 論者의 歴史觀에 依해서 크게 見解나 意見은 달라 진다. 여기에서는 時系列順序에 주된 歴史觀을 列擧해 나간다.

古代 유럽에서 基督敎의 影響力의 원, 神話上의 事件을 事實로서 적는 普遍史觀이 成立했다. 神學아우구스티누스의「神의 나라」과 같이, 聖書(舊約聖書新約聖書)를 그대로 事實이라고 把握해 天地創造 - 아담 - 노아의 方舟等을 거쳐 예스・그리스트가 誕生해, 現在가 있어, 이윽고는 마지막의 審判을 맞이한다고 하는 흐름이 存在하는, 中世에 걸쳐서 支配的인 歴史觀였다. 後의 啓蒙思想의 時代에 否定되었지만, 歴史에는 一定한 目的이 있다고 하는 發想은 後世에도 큰 影響을 주고 있다. 한편으로 中世에 있어서의 연대기는 思想의 相互関連을 考察하지 않고, 普通일열매를 列擧해 나가는 스타일을 取하고 있다. 「歴史觀」을 가지지 않는 이러한 書籍을 執筆한 著者의 関心은, 戰鬪等이 特異한 事件이나, 華麗한 祭典 等에 活躍할 수 있고 있다. 르네상스 以降, 自然科學이 發達해 自然界에 많은 法則이 있는 것이 證明되어 오면, 歴史 안에도 어떠한 法則이 있는 것은 아닐것인가 라고 하는 思潮가 높아져, 啓蒙思想의 時代가 되면, 歴史는 法則에 따라 無知蒙昧인 時代부터 啓蒙의 時代로 進歩해 간다고 하는 歴史觀(進歩史觀)이 主流가 되었다. 哲學헤겔人類의 歴史의 世界史的發展過程에 依해 理性(絶對精神)이 自己를 分明히 하는 것이라고 把握했다. 이것도 進歩史観의 하나이다. 近代英國에 있고, 歴史上의 事件을「進歩를 催促한 사람」과「進歩를 抵解한 사람 」이라고 하는 極端的인 二元論으로 解釋하는 휘그 당원 史觀이 成立했다. 歴史에 法則的進歩가 存在하는 일을 前提로 하고 있기 때문에, 後述하는 唯物史觀 같이, 進歩史觀으로부터 派生한 歴史觀의 하나로서 把握할 수 있다. 歴史學者 란케는 法則性의 論爭을 優先해 事實을 亂雜하게 取扱하는 進歩史觀에 發達해, 그 反動으로서 徹底한 實證主義的證明에 根拠하는 近代的인 研究方法을 確立해, 歴史學을 科學에 높였다(實證主義). 란케는 헤겔等의 歴史法則論을 否定해, 또 法則性이 要求된 原因이라고도 말해야 할 實用性을 至上視 하는 學問의 傾向에 對해서 警鐘을 울렸다. 哲學者 마르크스는 헤겔의 進歩史觀을 繼承하면서,思想이나 觀念을 歴史의 原動力으로 한 部分을 批判, 經濟的인 関係가 歴史의 原動力이다고 한 唯物史觀을 確立했다(「共産黨宣言」「資本論」). 또, 生産力生産関係의 矛盾이 깊어지면 社會變革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社会學者자•經濟學막스•웨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倫理와 資本主義의 精神」에 對하고, 人間의 行動을 規定하는 것으로서 宗敎에 注目해, 宗敎倫理와 經濟活動의 関連을 研究했다. 웨버의 이러한 手法은, 文化的인 差異가 歴史의 進展에도 差異가 생기게 하고 있는 것을 밝혔다. 또, 웨버는 學問에 價値判斷(例를 들면 社會主義가 올바른, 革命은 必然的인 等 )을 搬入하는 것을 厳格하게 批判했다. 歴史學者 앙리•피렌누는 經濟史의 側面에서 經濟的要素가 歴史에 重要한 影響을 주는 일을 論證했다. 피렌누의 研究는 같은 經濟를 重要한 要素로서 評價하고 있는 點에서는 唯物史觀과 一致하고 있지만, 圖式的인 見解를 拒否하는 等 區別을 分明히 한 内容이 되고 있다. 20 世紀에 登場한 아날學派( cole des Annales) 는 社會學이나 心理學等의 다른 社會科学으로부터 方法論을 援用해, 只今까지의 事件中心의 歴史認識에 對해, 心情이나 感性의 歴史, 또 歴史의 深層構造의 理解等 매크로的인 歴史把握을 目標로 했다. 또, 아날學派의 擡頭以降, 個別의 事件性이나 通史가 아니고, 論爭史 , 出版史, 物價史, 人口史, 經濟史, 心性史等의 社會學的인 테마사나, 社會學, 文化人類學, 經濟學, 民俗學等의 知見을 導入하는 學際性을 重視하는 傾向을 볼 수 있다. 地理學者•生物學쟈레드•다이아몬드는「銃, 病原菌, 쇄」로 地理學的•生物學的 要因이 歴史 決定짓는다고 主張, 史學界에 論爭을 일으켰다. 社會學者•歴史學者 워라스테인에 依해서 提唱된 世界시스템論은, 歴史는 1個의 나라나 社會에서 完結하는 것이 아니고, 世界시스템의 過程으로부터 把握해야 하는 것이다고 하고 있다

歷史法則Edit

近代에 있고 主流가 되고 있던 啓蒙主義나 唯物史觀에 對해서는, 歴史는 있는 法則에 根拠해 一定한 方向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 歴史法則의 發見이 重要한 研究目標로 해 내걸 수 있었다. 그러나 實證主義를 基幹으로 하는 오늘의 歴史學으로는, 基本的으로 1回性의 連續이며, 이러한 普遍的•絶對的인 歴史法則이 存在한다고 하는 意見은 保障되고 있다. 또 萬一 어떠한 法則性이 存在했다고 해도, 歴史는 人類文明에 存在하는 모든 要素로부터 構成되어 있는 至極히 複雜한 概念이며, 그 要素가 모두 解明되어에서도 하지 않는 한, 普遍的法則을 構築하는 일은 困亂하다. 단지 論者에 따라서는 緩慢한 法則(傾向法則)이면 解明은 可能하게 하는 論者도 存在한다라고 해도 法則과 같이 보이는 것은 大體로 하나의 假説에 지나지 않고, 例를 들면 唯物史觀은 올바른지, 그렇지 않을것인가 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歴史的思想을 正確하게 説明可能한 限에 두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客觀性Edit

現代史의 困亂함

例를 들면 古代그리스史나 르네상스史를 論하는 境遇와 自身이 사는 時代를 包含한 現代史를 論하는 境遇와는, 後者에게 固有의 困亂함이 생긴다. 現在의 社會가 안고 있는 諸課題가, 現代史에는 生成하게 反映되어 버린다. 例를 들면, 第二次世界大戰을 依해서 多大한 被害를 받은 사람들이 多數 生存하고 있어, 아직도 그 傷處는 治癒되지 않았다. 政治의 術策의 道具로서 그것이 利用되어 버리는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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