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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아시아共同體(East Asian Community)란, 東아시아에 있어 構想되고 있는 地域 共同體. 一般的으로, 東아시아地域을 統合한 블록經濟에 依해서, 美國, 유럽共同體에 匹敵하는 地域聯合을 成立시키려고 하는 構想에 있어 參照되는 槪念이다. 다만, 各國에 依해서 構想의 內容은 다르다. 國際經濟學베라・바랏사에 依한 地域統合의 類型에 對해 第3 段階(共同市場) 以上의 것을 가리키는 境遇가 많지만, 그 程度나 範圍를 包含해 明確한 定義는 定해지지 않았다.

槪要Edit

아시아地域의 經濟블록統合에 依해서, 徐徐히 블록經濟化하는 世界經濟를 克服하려는 試圖는, 第二次世界大戰前 日本에서 主唱된 東亞協同體論大東亞共榮圈構想에도 보여졌다. 日本은 戰爭前의 블록經濟에 依해 입은 損害와 世界貿易機構에 依한 大戰後 最大의 自由貿易體制受益國인 것부터, 共同體成立에의 姿勢는 至極히 消極的이었다. 이것에 對해서 中華人民共和國(中國)은, 아시아地域에 있어서의 自國의 影響力의 擴大를 圖謀해, 美國・유럽聯合에 對抗하기 爲해, 本構想에 對해서 積極的이다. 이것은 中國에 對抗할 수 있는 오세아니아, 印度等의 諸國을 包含하지 않는 ASEAN(東南아시아諸國聯合)+3(韓中日)이라고 하는 骨組로, 러시아가 主導하는 CIS(獨立國家共同體)와 같은 中國主導의 共同體를 意圖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ASEAN+3의 骨組에 對해서는 말레이지아도 贊同하고 있다(쿠알라룸프루宣言). 이것에 對해, 韓國이나 日本, ASEAN諸國은 主導權을 中國에 잡아지는 것을 싫어해 消極的이다. 日本政府가, 濠洲, 印度等 規模의 큰 自由主義國家를 包含한, 東아시아서미트를 軸으로 東아시아共同體에의 發展을 摸索하고 있다. 東아시아共同體는, 各國政府, 論者에 依해서 그 定義는 多樣하고, 日本의 自由民主黨(日本),公明黨政權은 「多樣性을 감싸면서 經濟的繁榮을 共有하는, 열린 東아시아共同體」라고 나타내, 民主黨(日本)社會民主黨(日本)國民新黨의 「聯立政權合意書」는 「中國, 韓國을 始作해 아시아・太平洋地域의 信賴關係와 協力 體制를 確立한 東아시아共同體(假稱)」라고 表現하고 있다.

東아시아의 地域槪念Edit

共同體構想에 있어서의 「東아시아」

仔細한 것은 「東아시아」를 參照

「東아시아」라고 하는 地域의 槪念을 생각하는 일은, 相當한 困難을 따른다. 現在, 政治的으로 範圍가 定해진 地域은 東南아시아이지만, 아시아의 다른 部分은 地域認識이 매우 曖昧하고, 一般的으로 ASEAN10 個國에 韓中日의 3個國을 더해 ASEAN+3으로 여겨지는 것이 많은 「東아시아」조차도, 例를 들면, 東아시아 서미트(EAS)에 印度가 參加하고 있는 일 等에서도 알을 것 듯이, 그 範圍는 때와 境遇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이 實情이다. 地理的인 觀點으로부터 말하면 「東아시아」란"아시아大陸의 東部에 位置하는, 太平洋에 接한 地域"을 意味해, 「極東」이라고 거의 同義로, 韓半島・中國・日本을 가리키고 있었다. 1993年 世界銀行리포트 「東아시아의 奇蹟」으로 처음으로 ASEAN가 東아시아에 一部로서 定議되었다. 한편, 國際聯合에 依한 定義에서는 韓半島・中國・日本(香港澳門을 包含한다)에 몽골을 더한 나라와 地域地理的인 東아시아로서 公表하고 있다. 元來 第二次世界大戰以後, 13個國에 依해서 「東아시아」라고 하는 地域單位가 形成되려면 大略的으로 나누어 3個의 要素가 있었다. 卽, 冷戰構造에 있어서의 東아시아 獨自的인 政治・安全保障시스템 構築, 1970年代NIEs 擡頭로부터 現在에 이르기까지의 東아시아 特有의 기러기 行列形 經濟發展의 達成, 權威主義로부터 民主主義에의 體制移行에 依한 經濟發展・비즈니스 네트워크의 擴大 및 거기에 따르는 相互依存關係의 深化이다. 이와 같이 現在의 「東아시아」에서는, 政治에 依해서 主導되는 地政學的要素보다, 經濟的인 觀點을 가지는 地理經濟學的要素가 强해지고 있다고 하는 把握하는 方法이 할 수 있다. 最終的으로, 地域的인 範圍가 「地域」으로서 사람들의 意識에 뿌리 내리는지 아닌지는 여러가지 事情에 依해서 定해져, 또 그 過程은 構造的要因과 함께 여러가지 偶然히로 左右되는 것이다.

東아시아의 經濟規模와 成長性Edit

東아시아는, 아시아通貨危機의 發生하는 1997年까지,"東아시아의 奇蹟"이라고도 불릴 程度의 經濟發展을 이루어 왔다. 通貨危機後도 大體로 順調로운 恢復을 이루고 있어 向後도, 나라에 依해서 氣勢의 程度로 差異는 있지만, 高成長을 持續시켜 가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싱가폴中繼貿易으로부터 加工貿易으로 政策轉換하는 일로, 工業國으로서의 地位를 쌓아 올렸다. 東아시아의 高成長은, 地域에 있어서의 主役을 交代시키는 일로 達成해 왔다. 第二次世界大戰後, 東아시아에 있고 經濟發展이 맨 앞장을 선 것은, 韓國戰爭의 特殊需要에 依해 景氣를 恢復시킨 日本에서 만났다. 1970年代初頭의 第1次石油危機의 影響에 依해서 成長이 減速할 때까지의, 그 經濟成長은"東洋의 奇蹟"과 稱贊을 만났다. 日本에 繼續된 것이 韓國, 臺灣, 香港, 싱가폴의, 이른바 NIEs 諸國이다. 1960年代부터, 外國으로부터의 資本이나 技術의 導入의 促進을 目的으로 하는 輸出指向型工業化政策의 導入에 依해 輸出을 擴大시키는 일로, 自國經濟에 成長을 가져왔다. NIEs 諸國의 成長에 若干 그늘을 볼 수 있어 1980年代後半보다 거기에 代身하는 形態로 高成長을 達成한 것이, ASEAN元加盟國中 싱가폴을 除外한,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타이의 4個國이다. 이러한 나라들은, 外國企業에 依한 輸出을 目的으로 한 直接投資의 受諾이나 投資・輸出의 促進에 依해, 經濟成長을 可能하게 했다. 덧붙여 1990年代부터는 ASEAN4 個國과 같게 中國도, 開發戰略에 依한 高成長을 實現시키고 있다.

東아시아에 있어서의 資本과 勞動力Edit

東아시아經濟의 높은 經濟成長의 要因으로서 第一로 擧論되는 것이, 飛躍的으로 擴大를 繼續하는 貿易이다. 東아시아諸國이 日本으로부터 技術이나 生産材의 提供을 받아 싼 勞動力으로 廉價의 製品을 生産하는 것에 依해서 外貨를 獲得해, 거기에 따라 自國의 經濟發展에 있어서 重要한 原材料, 機械, 技術等의 輸入을 可能하게 한다고 하는 메카니즘이, 東아시아諸國에서는 日本이 큰 役割을 이루어 왔다. 世界貿易의 約20%에 이르는 그 쉐어는, 아시아通貨危機後의 한 時期를 除外하면,1987-1988年,1994-1995年, 2000年이라고 하는 3度의 世界經濟高成長期에 對應한 急速한 擴大를 始作으로 해 全體的으로 增加傾向에 있어, 特히 中國에 對해서는 1980年부터 2003年 동안에 貿易이 20倍以上이나 增加, 2003年의 輸出入總額이 對前年對比 37.1%增의 8521億 1000萬 美달러가 되는 等, 게다가 上昇이 顯著하게 되어 있다. 또, 中國만큼은 아니기는 하지만, 이른바 CLMV諸國으로 꼽히는 캄보디아越南에서도 貿易의 成長이 두드러지고 있다. 덧붙여 機械産業이나 纖維産業等에서는, 日本으로부터 技術이나 生産材를 調達해, 生産品을 域內內外에 輸出한다고 하는 시스템이 構築되고 있어 이 때문에 域內의 貿易依存度에서도 輸出보다 輸入이 비싸지고 있다. 韓中日 3個國間의 貿易關係도, 日本이 尖端技術資本輸出해, 中國의 廉價의 勞動力을 使用하고 生産을 實施한다고 말하는 經濟構造・貿易構造를 反映한 것이어, 中日間貿易에서는 日本의 輸入超過, 韓中間 貿易에서는 中國의 輸入超過, 韓日間貿易에서는 韓國의 輸入超過라고 하는 三巴關係가 成立되고 있다. 貿易과 密接한 關係에 있어, 또 地域統合에 對해 貿易과 같게 重要한 役割이 期待되는 投資問題에 對해서는, 最大의 勞動力을 자랑하는 中國이 不公正한 許認可制度나 出資 制限을 韓日의 企業에 賦課하고 있는 것부터, 域內에 그만큼 活潑한 相互依存關係는 볼 수 없는 것이 現象이다. 이러한 現象을 받고, 韓中日 3個國은, 投資協定의 締結을 向한 交涉의 開始와 韓中日自由貿易協定의 促進할 意思를 2007年 1月의 韓中日頂上會談에서 一致시키고 있다. 이것은  安倍晋三(아베 신조우)政權의 發足에 依한 中日・韓日의 關係에 改善의 兆朕을 받은 것으로, 外國企業에의 不當한 差別이나 規制를 撤廢해, 現在의 2國間協定으로는 不充分이 되고 있는 內國民待遇를 서로 徹底하게 해 相互의 投資를 促進시키는 일을 目的으로 한 것이다. 이 交涉에서는, 中國이 韓日의 企業에 賦課하고 있는 許認可制度나 出資制限等의 緩和를 協議해, 中國에 있어 韓日의 企業이 中國 企業과 同等의 條件으로 營業할 수 있는 規制緩和가 要求되어 또, 知的財産權의 保護나 紛爭處理의 手續에 있어서의 規則의 整備, 中國政府에 依한 行政手續의 透明化等도 論議되었다. 直接投資에 對해서는, 日本이 域內에서는 支配的인 位置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直接投資를 實施할 때에 必要한 資金, 技術等을 先進國이 豊富하게 所有하고 있기 때문에 있다. 東아시아에 있어서의 直接投資國은, 1980年代부터 1990年代初頭까지는 日本뿐이었다. 1990年代以後가 되면 NIEs가 이것에 이어, 現在는 中國이나 말레이지아도 對外直接投資를 展開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中에서, 東아시아 3個國에 있어서의 直接投資流入의 世界에 차지하는 쉐어는 1994年의 15.4%로부터 2000年에는 4.7%에, 直接投資流出의 世界에 차지하는 쉐어는, 1990年의 20.4%로부터 2000年에는 3.4%로, 各各 激減하고 있다. 또, 3個國間으로의 直接投資流出入도 活潑하지 않고, 그 쉐어는 1995年의 9.8%로부터 2000年에는 6.1%로 減少했다. 通貨危機에 依한 影響도 無視는 할 수 없지만, 그런데도 同時期의 域內貿易比率과 比較하면, 域內投資는 極端的으로 적다. 이러한 最大의 原因으로서 東아시아의 域內投資의 大部分은 最大의 供與國인 日本(香港・澳門를 除外하다)에 依存하고 있어, 日本의 東아시아에의 直接投資는 活潑해지지 않은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없어진 10年"으로 여겨지는 日本經濟의 長期 停滯나 아시아通貨危機의 影響, 中國에의 리스크感・不信感(차이나 리스크)을 背景으로 하는 對中國投資의 不振等에 認한 것이다. 지역화를 향한 지금까지의 경위

ASEAN의 擡頭Edit

ASEAN는 1967年 8月, 反共産主義가 立場을 取하는 東南아시아 5個國, 싱가폴・인도네시아・필리핀・타이・말레이지아에 依해서 結成되었다. 當時는 經濟的인 相互依存 關係는 大部分 없는 ASEAN였지만, 1971年의 東南아시아 平和・自由・中立地帶 宣言(ZOPFAN), 1976年의 ASEAN協和宣言東南아시아友好協力條約(TAC)에 象徵되는 强靭한 結束力에 依해서 政治的主體性을 確立해, 國際社會에 있어서의 存在感을 늘려 갔다. 1984年에는 브루나이가 加盟해, 그 後도 1995年 越南, 1997年 라오스미얀마, 1999年에 캄보디아가 새롭게 加盟, 10個國體制에 依해서 東南아시아의 거의 全域을 커버하는 現在의 地域統合體로 發展을 이루었다. 特히 미얀마와 캄보디아의 加盟에 關해서는, 强壓的인 政權아래, 民主化가 進行되지 않는 兩國의 加盟에 反對하는 美國과 兩國을 支援하는 中國의 對立 안에서, ASEAN가 條件附면서 兩國의 受諾을 나타낸 일로, 國際社會에 對해 그 姿勢의 變化를 誇示하는 結果에 連結되었다. 또 1997年 12月의 非公式頂上會議에서는, 經濟 뿐만 아니라 政治・安全保障・社會・文化라고 하는 面에서도 統合을 深化시키는 ASEAN 共同體를 2020年까지 實現시키는 일을 目標로 하는 ASEAN 비전 2020을 採擇하고 있어, 1998年 12月에는 하노이行動計劃으로 經濟統合의 促進이, 2004年 11月에는 비엔티안 行動프로그램으로 域內 格差의 是正이나 地域競爭力의 强化에 關한 協力的骨組 ASEAN 統合主導權(IAI)이, 各各 設定되었다. 또, 2003年 10月의 頂上會議에서는, ASEAN 安全保障共同體(ASC), ASEAN 經濟共同體(AEC), ASEAN 社會・文化共同體(ASCC)의 3個의 共同體形成을 通해서 ASEAN 共同體의 實現을 目標로 하는 第2 ASEAN 共和宣言을 採擇해, 2007年 1月의 頂上會議에서는 2020年으로 하고 있던 從來의 豫定을 5年 빠른, 2015年에 實現시키는 세브宣言을 採擇했다. 共同體形成에 背景에는, 中國이나 印度等 近隣諸國의 擡頭에 依한 ASEAN의 存在感의 低下에의 危機感이 있지만, 세브宣言에서는 2007年 11月 豫定되는 ASEAN 共同體의 最高規範ASEAN 憲章의 制定이나 대테러協定의 締結, 域內의 移民勞動者의 權利保護도 구가하고 있어 이것에 依해 ASEAN의 結束力은 한층 强固한 것이 된다고 생각되고 있다. 結束力과 함께 ASEAN의 特徵으로서 들 수 있는 것이, 域外諸國과의 協力關係의 强化와 거기에 벗길 수 있었던 리더쉽이다. APEC 設立後에 積極的인 役割을 完遂한 일 뿐만 아니라, 只今까지 ASEAN의 呼訴에 依해 1993年의 ASEAN 擴大外相會議나 1994年의 ASEAN 地域포럼(ARF), 1996年의 아시아 유럽會合(ASEM)을 開催하는 等 해 왔다.

東아시아經濟그룹으로에서 東아시아 서미트에Edit

1990年代에 들어와, 世界化 아래에서 資本貿易의 自由化를 進行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 ASEAN는 外國資本이나 技術의 導入을 爲해서, ASEAN를 보다 魅力있는 經濟市場으로서 統合하는 必要를 느꼈다. 이것을 받아 1990年末에는 말레이지아의 마하틸・빈・모하마드 首相에 依해서, ASEAN6 個國에 印度支那諸國이나 韓中日等을 더한 東아시아經濟그룹(EAEG)이 提唱되었다. EC(現・EU・유럽聯合)나 NAFTA(北美自由貿易協定)의 進展에 對抗할 수 있도록 提唱된 이 構想은, 後에 東아시아經濟協議體(EAEC)라고 改稱되지만, 排他的經濟블록을 念慮하는 美國의 反對나, 거기에 追從한 日本의 不參加等에 依해 成立하는 일은 없었다. EAEG 構想이 挫折하면, 아시아와 EU와의 提携의 必要性을 느낀 유럽委員會에 依해서 發表된 報告書 「 新아시아戰略을 向해서」를 받고, 1994年 10月의 演說에 對해 싱가폴의 吳作棟首相이 아시아 유럽 會合(ASEM)을 提唱하는 일이 된다. 이 時點에서의 아시아側의 멤버는 ASEAN와 韓中日이 豫定되어 있어 그것은 EAEG 構想과 겹치는 것이었다. 뉴질랜드나 印度, 臺灣等도 參加의 意向을 나타냈지만 말레이지아의 反撥을 當해, 最終的으로는 ASEAN6 個國에 越南, 日本, 中國, 韓國을 더한 10 各國이 아시아 代表로 해서 選擇되었다. 또, 거의 때를 같이 해 ASEAN와 韓中日에 依한 經濟閣僚會合도 計劃되고 있었지만, 濠洲와 뉴질랜드의 參加를 認定받지 못했기 때문에 日本이 參加를 拒否해, 그것을 받아 韓國도 不參加를 表明, 結果的으로 EAEG와 同一 멤버로의 첫 會合이 中止를 避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1996年 2月에는 ASEM에 關聯해 ASEAN7 個國과 韓中日에 依한 頂上會談이 開催되어 準備會合이라고 하는 자리 매김이면서도, 事實上의 ASEAN+3 會議가 成立하는 일이 된다. 1997年 12月, 쿠알라룸프루에 있어서의 非公式의 ASEAN 頂上會議에 즈음해, 처음으로 ASEAN+3이라고 하는 骨組로의 頂上會議가 開催되는 일이 되지만, 이 契機를 만든 것은 1997年 1月의 橋本龍太郎(하시모토 류우타로우) 首相의 東南아시아 訪問이었다. 日本과 ASEAN와의 關係强化를 目標로 한 橋本首相은, 싱가폴에서의 演說로 橋本독트린을 提示해, 同時에 日本과 ASEAN의 首腦에 依한 定期的인 會合을 提案했다. 이것에 對해, 中國에의 影響을 念慮한 말레이지아는 「中國에 對해서는, 封鎖政策은 아니고 友好政策을 採擇해야 한다」라고 해, 愼重한 姿勢를 보였다. 同年 3月에는, ASEAN 頂上會議, ASEAN+3 頂上會議, ASEAN+1(日本) 頂上會議의 同時開催가 말레이지아에서 提案되어 最終的으로는, 더욱 ASEAN+1(中國) 頂上會議를 더한 4個의 會議가 開催되었다. 이와 같이, 日本과 ASEAN와의 關係 强化를 노린 日本의 外交政策은, 結果的으로는 ASEAN+3이라고 하는 骨組를 形成하는 일에 連結되었던 것이다. 방톸은 아시아經濟에 多大한 影響을 가져온 通貨危機發端의 땅이다. 또, 그러한 때에 發生한 1997年 7月의 아시아通貨危機가, 짓궂게도 아시아의 結束力을 한층 强化해 地域提携를 보다 加速시키는 일이 되었다. 緊急支援을 要求한 韓國・타이・인도네시아・에 對해, 美國의 主導하는 IMF나 아시아太平洋經濟協力會議 (APEC)는 아시아의 資本主義를 연고 資本主義로 非難해, 支援에 無關心했다. 東아시아諸國이 漸次 日本에 支援期待를 始作하면, 日本은 이것을 받아 아시아通貨基金(AMF) 構想을 밝혔다. 이 構想은 美國과 IMF의 反對로 따라 挫折했지만, 이 番은 새로운 支援策으로서 싱구늪構想으로 形態를 바꾸어 1998年 12月의 越南에 있어서의 ASEAN 頂上會議에 招待國으로서 參加했을 때에 提示되었다. 또, 中國의 胡錦濤副主席이 財政部長官・中央銀行總裁에 依한 會議의 開催를, 韓國의 金大中大統領이 東아시아・비전・그룹(EAVG)의 設置를 提案했다. 이와 같이, 通貨危機를 둘러싸는 一聯의 움직임에 依해서 東아시아諸國은, 旣存의 制度나 秩序의 不充分함이나 IMF・아시아 開發銀行(ADB)의 無力함을 痛感해, 東아시아에 있어서의 地域提携의 必要性을 認識하는 일이 되었다. 같은 骨組로의 會合이 2年連續으로 開催된 일은, 「ASEAN+3」이라고 하는 骨組의 存在를 나타내려면 充分한 것이며, 또 胡錦濤副主席이 提案한 만큼 들별로의 ASEAN+3 會合의 開催가 承認된 일은 그것을 證明하는 形態가 되었던 것이다. 東아시아地域協力의 實體化에의 움직임은, 1999年 11月의 ASEAN+3 頂上會議에 對해 採擇된 「東아시아에 있어서의 協力에 關한 共同聲明」으로 發端한다. 이것은 APEC이나 東南아시아諸國聯合地域포럼(ARF)과 比較해도, 經濟, 社會로부터 政治, 安全保障에 이르기까지, 至極히 包括的으로 協力을 實施하는 일을 宣言한 것이었다. 2000年 3月의 財政部長官・中央銀行總裁代理會議에서, 새로운 基金의 創設도 視野에 넣은 資金協力의 骨組 만들기의 檢討가 合意되어 5月에는 通貨스왑(currency swaps) 協定을 向한 合意에 이르렀다. 이것이, 이른바 첸마이・이니시아트브(CMI)이다. 이 會合에서는 ASEAN+3 財政部長官會議의 半年 마다의 開催에 對해서도 合意해, 以後도, 같은 骨組로의 經濟閣僚會의・外相會의・勞動相會의・農林相會의・觀光相會의・에너지相會의・環境部長官會議가 設立되어 그 中에는 定例化하고 있는 것도 있다. 이와 같이 ASEAN+3이라고 하는 骨組는 事實上의 制度化에 向하여 그 方向性을 定해 가는 일이 되었다. ASEAN+3 頂上會議가 同範圍 짜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의 閣僚會議의 定點으로서 자리매김되기 始作하면, EASG에 對해 ASEAN+3을 東아시아 서미트에 進展시키는 것이 論議되어 同時에 貿易과 投資의 自由化를 凝視한 東아시아의 協力體制의 促進이 檢討되기 始作했다. 또, ASEAN・中國頂上會議에서 中國의 朱鎔基首相이 中國 ASEAN間에서의 自由貿易構想을 提案한 일로, 結果的으로 東아시아 全域에 있어서의 自由貿易構想의 可能性이 檢討되기 始作했던 것이다. 同時에, 韓中日頂上會議에서는韓中日頂上會談의 定例化도 合意되고 있다. 덧붙여 이것들 一聯의 움직임 中에서, 가장 政治的 리더쉽을 發揮한 것은, 中國에서 만났다. 그것까지 地域 協力에 無關心했던 中國은, 中國・ASEAN 自由貿易地域의 創設의 提案뿐만이 아니라 2001年以後 每年 보아오・아시아・포럼을 開催하는 等, 近年 그 움직임을 活潑化시키고 있다. 中國과 ASEAN의 貿易總額은 1990年以後急增하고 있어, 2004年에는 1000億 달러에 이르러, 이것은 溫家寶首相이 2003年에 밝힌 2005年으로의 達成을 앞당겨서 實現된 일이 된다. 또, 2004年에 ASEAN와의 共同開催로 中國 ASEAN 博覽會(CAEXPO)가 廣西치원族自治區에서 開催되는 等, 中國과 ASEAN의 經濟緊密化는 急進展하고 있다. 더하고, 同年의 中國 ASEAN 頂上會議에서는 中國・ASEAN 戰略 파트너십 行動計劃을 發表해, 아울러 雙方은 2005年부터 段階的으로 關稅를 引下하는 일이 되었다. ASEAN元加盟國 6個國과는 2010年에, 新加盟國 4個國은 2015年에, 大部分의 貿易品의 關稅를 撤廢하면 定해져 있어 이것에 依해 中國・ASEAN間의 貿易額數는 2000億 달러에 이를 것이다라고 보여지고 있다. 한편 日本은, 中國이나 韓國에 比하면, 東아시아의 地域化에 對해서는 매우 消極的인 感은 否定할 수 없다. 日本은 GATT(関税 및 貿易을 關한 一般協定) 原則에 빼앗은 多國間으로의 自由貿易原則의 重要性을 呼訴해 또 外交의 基本方針으로서 對美・對歐關係를 重視한 나머지 아시아에 軸을 둘 수가 할 수 없었다. 이것에 依해, 日本은 世界化下에서의 地域化의 意味를 充分히 把握하지 못하고, 그 對應에 늦어를 取하는 일이 되었다. 近年 艱辛히, 日本의 貿易政策은 WTO(世界貿易機關)를 主體로 한 多國間貿易自由化策으로부터 FTA(自由貿易協定)에 依한 地域 貿易協定에 重點을 둔 政策으로 轉換하고 있어, 2002年에 싱가폴과의 사이로는 日本에서 첫 FTA가 되는 新時代經濟聯合聯携協定(EPA)을 締結했다. 이것을 始作으로, 2003年에는 韓國과의 FTA 交涉을 開始, 2005年에는 멕시코와의 經濟聯合聯携協定을 發效해, 同時에 ASEAN와의 協定締結을 向해서 本交涉開始를 豫定하는 等, 日本은 FTA 締結에의 對處를 加速시켰다. 2002年에는 小泉純一郎(코이즈미 쥰이치우)로 首相이 싱가폴에서의 政策演說에 對하고, ASEAN+3에 濠洲와 뉴질랜드를 더해 「共同體」를 보다 漠然히 시킨 地域協力을 目標로 해, 東아시아를 「 모두 걸음 모두 進行되는 커뮤니티」라고 하는 構想(東아시아・커뮤니티構想)을 밝혔다. 또 그 때문에, 1.敎育・人材育成分野에 있어서의 協力,2.2003年 「日本・ASEAN 交流年」, 3.日本・ASEAN包括的提携構想, 4.東아시아開發主導權(IDEA), 5.國境을 넘는 問題(海賊, 테러, SARS(重症急性呼吸器症候群)나 HIV(人間免疫缺乏바이로스)라고 하는 感染症, 해일等의 大規模災害, 그 外)를 包含 安全保障面에서의 日本과 ASEAN間으로의 協力强化라고 하는 「5個의 構想」을 나타내, 게다가 向해 日本은 ASEAN 重視政策의 一環으로서 여러가지 協力을 밝히고 있다. 2003年 12月의 日本・ASEAN 特別頂上會議에서는, ASEAN의 首腦가 ASEAN 域外에서 처음으로 一堂에 모일 機會가 되었던 것 뿐만 아니라, 前述의 「5個의 構想」의 하나인 日本・ASEAN 交流年의 紀念的 이벤트나 되었다. 또, 이 會議에 對해 日本・ASEAN東京宣言과 그 實現을 向한 日本・ASEAN 行動計劃가 採擇되어 幅넓은 分野에서의 協力이 約束되었다. 이것들 一聯의 움직임은, 日本의 ASEAN 重視政策을 象徵하는 形態가 되었다. 東아시아 서미트 參加國 以上과 같이, 現在, 東아시아의 地域化에의 움직임은 韓國・ASEAN, 日本・ASEAN, 中國・ASEAN의 세 기둥으로 進行되고 있어 韓中日과 ASEAN가 一體化한 形態로의 包括的인 政策檢討는 EAVG의 報告의 檢討作業을 實施하는 東아시아・스터디・그룹(EASG)에 맡길 수 있고 있다. 2003年 11月, EASG에서는 17의 短期的措置와 9의 中期的措置를 提言하고 있어, 더해 ASEAN+3이라고 하는 骨組에 依한, 長期的目標로 한 東아시아 서미트(EAS)를 指摘했다. 2005年에는 말레이지아가, ASEAN의 議長國을 맡는 일을 機會로, 同國 쿠알라룸프루에 있어서의 第1回 EAS를 提案했다. 繼續되어 中國도 2007年의 第2回 EAS의 北京에서의 開催를 示唆했다. 이에 따라, EAS를 2年에 1度 ASEAN 域內와 ASEAN 域外의 나라가 交代로 開催한다고 하는 論議가 이루어지기 始作했던 것이다. 同年의 第1回 EAS에서는, 結局 ASEAN+3에 加勢해 印度, 濠洲, 뉴질랜드도 參加해, 合計 16個國에 依한 開催가 되었다. ASEAN와의 關係의 깊이나 東南아시아 友好協力條約(TAC) 加盟國이라고 하는 條件으로 選擇된 印度, 濠洲, 뉴질랜드에 對해서는, 中國擡頭의 影響으로 ASEAN의 影響力의 低下를 무서워한 인도네시아와 싱가폴이 그 參加를 支持한 일에 依해 實現되었다. EAS에 對해서는, 參加國의 骨組나 ASEAN 頂上會議와의 關聯性, 共有해야 할 理念의 方向性에 對해서, 아직도 論議를 必要로 하는 爭點이 많이 남아 있다. 形式論先行의 움직임에 對해, 根本이 되는 東아시아 協力의 意義에 對해 再次論議를 要求하는 소리도 있지만, 그런데도 東아시아가 스스로의 主體性을 發揮해 서미트를 開催한 일자체에 對해 「東아시아의 地域化를 向한 第一步」로서 一定한 評價를 하는 有識者도 있다.

東아시아에 있어서의 FTA와 東아시아共同體構想Edit

東아시아에 있어서의 最初의 FTA는, 1992年에 合意, 1993年에 締結된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필리핀, 싱가폴, 타이, 브루나이의 6個國(90年代後半에는 越南,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도 加盟)에 依한 ASEAN 自由貿易協定(AFTA)이었다. 이것은 中國이 主流가 되고 있던 先進諸國으로부터의 投資를 ASEAN 地域으로 向하게 하기 爲해, 投資處로서 地域의 魅力을 높이는 必要를 느낀 것이었다. AFTA의 當初의 計劃은 2007年까지 모든 工業品의 輸入關稅를 引下해 2008年에는5% 以下로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ASEAN는 2003年, 從來의 計劃을 5年 앞당기하는 形態로 이 目標를 達成하고 있어, 새로운 目標로 해 越南을 2003年, 라오스・미얀마를 2005年, 캄보디아를 2007年까지, 各各 關稅率을 引下하는 일을 定했다. 同時에, 2015年의 經濟統合의 實現을 向해서, 域內의 關稅의 完全撤廢나 投資의 自由, 서비스貿易이나 看護師等 特定의 職業에의 從事者, 熟鍊勞動者의 移動의 自由를 進展시키는 일을, 將來的인 비전으로서 내걸고 있다. 한편, 多角的貿易시스템을 내걸어 地域主義에 警戒感의 强했던 東北아시아에 있어서의 FTA에의 움직임은, 1998年 11月에 韓國에서 日本으로 韓日FTA가 提案된 것이 始作이었다. 韓國은 이 外 뉴질랜드, 싱가폴, ASEAN等과의 FTA를 檢討하고 있다. 韓國에 그 다음에 積極的인 싱가폴도, 2002年의 日本과의 EPA, 유럽 自由貿易 聯合(EFTA)과의 FTA 締結이나, 2003年의 韓國에의 FTA 提案等, 活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日本에 있어도, FTA에 對해서, 保護主義이다고 하고 있던 從來의 認識을 고쳐 2000年版의 通商白書 속에서 그 價値를 認定해 積極姿勢로 變했다. 現在는 타이나 필리핀, 越南等과의 FTA가 檢討되고 있는 것 外에 2015年까지의 締結이 豫定되어 있는 中國・ASEAN間으로의 FTA에 呼應하는 것 같이, 2002年에 日本・ASEAN 包括的經濟聯合提携構想을 提案해, 2002年 9月의 ASEAN+日本・經濟 閣僚會議에 對해 2012年까지의 締結에 關係되어 合意를 얻고 있다. 日本은 東아시아의 途上國을 中心으로 FTA 展開를 進行시키고 있지만, 이것은 相對國에의 進出이나 國內의 構造改革의 推進, 經濟支援에 依한 途上國의 經濟・政治・社會的安定을 目的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貿易自由化에 依한 農業分野에의 損害가 念慮되는 일로부터, 特히 타이等 農業國과의 FTA 締結에 對해서는 愼重한 姿勢를 보이고 있다. 中國에 對해서는, WTO 加盟에 依해서 世界市場과의 距離를 줄인 後, 前述과 같이 ASEAN와의 包括的인 經濟聯合提携構想에 調印했다. 中國만의 關稅引下를 先行시키는 早期關稅 引下措置(어얼리 하베스트措置)를 提示해서까지도 締結에 齟齬된 中國의 姿勢에서는, 貿易自由化 뿐만이 아니라 投資의 自由化나 經濟開發協力等, 아마 들에 있어서의 協力 關係를 目標로 하려는 意圖를 물어 알 수가 있다. 韓國의 金大中大統領에 依해 提案된 東아시아 3個國의 經濟協力共同硏究가 根幹으로 여겨지는 韓中日 3個國間의 FTA에 對해서는, 上述한 대로 2001年의 頂上會議에서 中國의 朱鎔基首相이 提案했지만, WTO의 新規화 加盟國인 中國의 WTO 룰 遵守의 可否가 不透明하는 일, 日本의 特定 産業에의 影響이 念慮되는 일等에서, 日本은 積極的인 立場은 取하지 않았다. 또, 最近에는 東아시아全體를 包含하는 FTA(東아시아FTA)도 檢討되기 始作했다. 1998年 12月의 ASEAN+3 頂上會議에서는, 有識者에 依해서 構成되는 EAVG를 發足시켜, 長期的인 時點에서 把握한 協力體制의 硏究의 推進이 合意되었다. EAVG는 2001年 11月, 各國의 首腦에 對해 東아시아 FTA를 包含한 提案을 實施하고 있어 EAVG보다 이어받아진 EASG가 2002年 11月, 東아시아 FTA에 關해서보다 詳細한 提案을 實施하고 있다. EASG의 提案은, 各國國內의 一部産業으로부터의 反撥을 理由로 公式的인 議題로서 다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EASG를 한층 더 繼承해 2003年에 發足한 東아시아・씽크탱크・네트워크(NEAT)가 東아시아 FTA에 關한 對話繼續과 相互理解의 推進을 目的으로 活動을 繼續하고 있다. NEAT에 關해서는, ASEN+3 各國의 支持를 받고 있다고 하는 點으로, EAVG나 EASG와는 區別을 分明히 하는 것이다. 贊反兩論있는 FTA이지만, 그 動態的인 市場擴大나 競爭促進의 效果, 더해 政策革新의 效果까지도 注目받기 始作하고 있어 ASEAN+3의 自由化에 있어서의 GDP가 밀어 올려 效果는 中國의 27.7%를 筆頭로, 말레이지아 18.5%, 타이 18.4%, 싱가폴 16.9%, 인도네시아 13.4%, 韓國 9.1%, 필리핀 8.4%, 日本 1.0%(日本經濟硏究센터試算)로 되어 있다. 또, ASEAN+3을 軸으로 進行되고 있는 東아시아共同體構想의 第一段階로서 東아시아 FTA가 不可缺하다라는 見解가 强하다. 現在, 韓中日과 ASEAN가 一體化한 形態로의 共同體가 成立한다고 하는 明確한 展望은 서있지 않지만, 經濟面에 對하고, 韓中日이 一體가 되어 經濟共同體를 成立시키는 것이, 東아시아 經濟가 가지는 經濟 規模와 成長性을 充分히 살리기 爲한 第一步라고 생각할 수 있고 있어 外務省(日本)의 프로젝트 「韓中日 3個國의 競爭力比較共同硏究」等에서도, 韓中日의 FTA가 形成되면, 形成되지 않는 境遇와 比較해 3個國 모든 經濟成長率을 上昇시킨다고 豫測되고 있다. 民主黨(日本) 政權의 政策에 影響力을 미치고 있는 姜尙中 東京大學校敎授는, 中國과 日本의 關係로부터 韓國 서울에 首都가 놓여진다고 하고 있다.

東아시아共同體의 메리트Edit

通貨危機等 間接的으로 地域化를 促進시키는 要因은 있었지만, 21 世紀以後 急速히 進展하는 東아시아에서의 FTA와 地域의 協力體制의 形成에 對해서는 元來 必然이다. 그렇지만 民族・宗敎・文化等의 多樣性이 豊富하는 東아시아는, 일찌기 地域化와는 無緣과 看做해지고 있던 것처럼 解決해야 할 많은 課題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日本人은 形式的인 것이 아니고, 眞正한 파트너로서의 東아시아를 認定해 벌써 한 걸음 내디뎌 共同體의 必要性이나 方向性, 解決해야 할 課題等을 確定해 長期的・戰略的 視點으로부터 向後의 對應을 決定할 必要가 있다.

進行하는 世界化과 地域化Edit

21 世紀初頭의 世界經濟는, 全世界를 1個에 감싸는 世界化라고 하는 흐름과 거기에 觸發된 일어난 EU・NAFTA를 始作으로 하는 大規模地域經濟化라고 하는, 2個의 흐름이 同時에 進行되고 있다. 美國・캐나다・日本・EU의 4極히 支配로 運營되고 있던 國際的으로 平等한 自由貿易의 推進이라고 하는 GATT의 傳統이 무너진 結果, 라운드 交涉에 있어서의 途上國이나 NGO의 發言力이 强해져, 交涉의 進陟에 影響이 나타나기 始作했다. 그 結果, 先進諸國은 보다 容易한 2國間 또는 複數國間의 地域協定에 活路를 要求하게 되어, 世界의 貿易國의 大部分이 FTA 等 地域協定으로 複雜하게 얽힌 네트워크에 依해 連結된다고 하는 現在의 狀況을 일으키고 있다. 地域化에 對해 가장 代表的으로 여겨지는 EU나 NAFTA 뿐만이 아니라, 南美共同市場(MERCOSUR)이나 아프리카聯合(AU) 等, 國民國家를 基本的인 單位로 하면서도 世界의 大部分의 나라가, 政治・經濟等의 分野에 있어 어떠한 地域 機構에 짜넣어지고 있어 國家間・地域間에 있어 여러가지 利害關係를 가진다고 한다, 只今까지 類例없는 듯한 複雜한 世界情勢를 만들어내고 있다.

大國主導의 國際秩序의 變革과 西歐的價値觀의 相對化Edit

獨協大學校의 金子芳樹敎授는, EAEC 構想에 關해서, 「大國主導의 國際秩序, 西歐的 價値觀의 普遍視, 價値나 라이프 스타일 等에 對해서 歐美가 위에서 아시아가 아래라고 하는 暗默의 評價基準이라고 한, 現在의 國際社會의 價値體系를 單番에 Break through 하고 싶다고 하려는 意圖가 EAEC 構想 안에는 包含되어 있던 것은 아닌가」, 東아시아 共同體의 멤버에게 濠洲와 뉴질랜드를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日本의 發想에 對해서, 「컨셉의 不明確한 어중간한 骨組를 만들고 무엇이 可能하는지, 라고 묻고 싶어지는 것은 마하틸 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 範圍에 到着해 說得力이 있는 說明이 이루어지지 않는 以上 結局,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그리고 열매도 없게 끝나, 强力한 걸음으로 發展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닐까 느낀다」라고 말해, 東아시아共同體에는 文明史的意義가 있다고 指摘하고 있다.

分業體制의 協調的인 確立Edit

1990年代의 東아시아에 있어서의 貿易의 特徵으로서 完成品의 貿易額에 比해, 部品이나 素材等 中間財의 貿易額이 增加傾向에 있는 것이 들 수 있다. 日本에서 東아시아에 싼 勞動力을 要求技術移轉이 進行된 일에 依한 아시아地域의 生産基盤의 發展과 거기에 따르는 貿易投資障壁의 低減・撤廢의 進展에 依해, 企業이 國境을 넘어 生産據點을 自由롭게 選擇해 經濟活動을 行하기 爲한 環境이 整備되었다. 그러나, 産業別로 보면 반드시 모든 産業에 對해 中間財貿易이 增加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自國産業의 保護育成政策에 依해서 沮害되고 있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東아시아 特有의 기러기 行列型發展은, 지적의 프로세스와 通하고, 東아시아 各國의 構造調停을 재촉해, 發展段階에 應한 만큼 業體制를 形成해 왔다. 共同體의 形成에 依해서 이 기러기 行列型發展은 한層 더 促進되어 東아시아의 途上國이 協調的分業 體制 안에서 自國의 發展段階에 適切한 地位를 獲得해, 그것을 通해서 所得의 지적과 社會問題의 克服을 實現할 可能性도 있다. 이러한 協調分業體制의 確立에 依한, 東아시아의 經濟成長의 한層 더 促進을 指摘하는 有識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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