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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貫은, 發祥을 같이 하는 同一父系氏族輯團(宗族, 門中)의 發祥地, 或은 宗族 그 自體를 나타내는 槪念이다. 朝鮮王朝時代以後, 家族制度의 重要한 要素로서 社會的・法的인 位置를 차지했다. 現在도 大韓民國에서는 과 함께 「本貫」에 法的인 規定이 있다. 省略해 本이라고도 해, 그 밖에 「貫鄕」等의 부르는 法이 있다.

槪要Edit

韓國의 姓은 約 250으로 적고, 5大姓으로 불리는 金, 李, 朴, 崔, 鄭等의 一部의 姓에게 人口가 集中하고 있기 때문에, 「本貫과 姓」의 編成에 依해서 하나의 宗族이 辨別된다. 例를 들어 金姓의 境遇, 金海伽倻王族系와 新羅王族系等 起源이 다른 宗族이 있다. 本貫은 同姓 안에서 다른 宗族集團을 區別하기 爲한 有效한 手段이었다. 金海를 本貫으로 하는 伽倻王族系의 金氏의 宗族集團을 金海金氏라고 한다. 같이 新羅王族系의 金氏를 代表하는 慶主金氏의 本貫은 慶州이다. 큰 姓은 複數의 本貫으로 나뉘고 있어 最大의 金姓에게는 285의 本貫(宗族集團)이 包含되어 있다. 反對로, 中小規模의 姓에게는 單一의 本貫으로 構成되는 것도 있다. 덧붙여 各 여러분족이 가지는 유서에 따라서는, 姓이나 本貫을 달리하고 있어도 同一한 宗族이라고 보여지는 境遇도 불과이지만 있어서, 反對로 本貫보다 작은 그룹에 依해서 宗族集團을 區別하는 例도 있다(後述의 金海金氏等).

沿革Edit

宗族을 나타내는 「本貫」의 制度는, 高麗時代에 郡縣制 아래에서 地方의 有力豪族들의 사이에 行해지게 되었다. 朝鮮王朝時代에는 族譜의 整備가 進行되는 것과 同時에 社會的인 家族制度의 構成要素로서 重視되게 되어, 同姓同本(姓과 本貫이 同一)의 男女通婚은 認定받지 못하게 되었다(同姓同本不婚). 血統으로서의 本貫은, 朝鮮王朝後期부터 末期 걸쳐 族譜의 賣買가 行해진 것으로 混亂해 버렸다. 日帝時代, 家族制度에 對해서는 「慣例」를 남기고 있어 朝鮮戶籍令에 根據하는 戶籍에 「本貫」이 記載되어 朝鮮民事令으로 同姓同本의 結婚이 法的으로 認定받지 못했다. 이러한 法的인 規定은, 大韓民國의 戶籍이나 民法에도 繼承되었다. 韓國에서는, 法的으로 同姓同本의 結婚을 禁止하는 民法 第 809條 1號(en:Article 809 of the Korean Civil Code)의 規定은, 1997年憲法裁判所에서 無效라고 判斷되었다. 이 判決後, 同姓同本의 事實婚의 夫婦가 겉에 출, 法律上의 夫婦의 便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에서는, 宗族制度와 함께 本貫은 廢止되고 있다.

本貫의 編成Edit

本貫(本貫地)은, 氏族의 始祖나 그 子孫(中興의 先祖를 나카 始祖라고 부르는 境遇도 있다)이 定着한 土地나 封鎖된 場所이다. 宗族 안에서는 始祖로부터 몇 代째로 세는 것이 많다. 本貫(宗族集團)안에는, 複數의 始祖를 가지는 것도 存在한다. 始祖의 차이나 中始祖가 다른 境遇 00類와 流派를 붙여 區別한다. 또 同本貫에서도 分明하게 다른 境遇는 別本貫으로서 取扱하거나 本貫을 바꾸는 케이스가 있다. 例를 들어, 金海金氏의 境遇, 金海伽倻王族을 先祖로 하는 本貫과 沙也可等을 先祖로 하는 贈金海金氏, 新羅王族의 後裔를 稱해 金海를 本貫으로 한 金氏(後에 金寧金氏라고 改稱했다)가 存在했다. 또, 安東金氏에게도 新羅王族의 後裔를 稱하는 金氏(舊安東金氏)와 高麗建國의 功臣을 先祖로 하는 新安東金氏가 있다. 같은 本貫의 境遇, 이름을 붙이는 境遇에 行列字等을 利用하고, 같은 代끼리는 같은 漢字를 使用해 命名하는 케이스도 많다. 本貫이나 族譜에는, 朝鮮王朝時代의 兩班이 스스로의 家系의 正統性이나 優秀性을 證明하기 爲한 性格이 있다. 그 性格 理由인가, 韓國의 本貫의 始祖로서 求할 수 있는 것은, 新羅王族系, 伽倻王族系(中始祖가 統一新羅에 貢獻한 功臣), 新羅豪族・貴族系, 高麗의 功臣 및 中國의 著名한 學者나 武將等의 渡來系(다만, 中國渡來系 안에서 王姓・孫姓等은, 渡來系를 祖上으로 하는 本貫이 전무나 由來가 不明한 작은 本貫뿐이다)가 大部分을 차지한다. 例를 들어, 新羅王族의 慶州金氏의 系列에서는 56代敬順王(新羅 마지막 王)의 3男과 4 사내 아이 孫子가 慶州金氏이며, 長男의 血統은 끊어져 次男이 羅州金氏, 5男이 義城金氏, 6男이 洪州金氏, 7男이 彦陽金氏, 8男이 三陟金氏, 9男이 蔚山金氏라고 알 수 있고 있다. 4男의 血統은 더욱 細細하게 나뉘어 舊安東金氏, 金寧金氏等의 大族을 안고 있다. 또, 54代景明王의 子孫도 長男의 密陽朴氏를 始作으로 해 10以上의 本貫으로 나누어져 있다. 反面 百濟系는, 旌善全氏, 天安全氏의 系列, 高句麗系는 晉州姜氏程度와 極端的으로 적고, 渤海系에 이르고는 密陽대氏뿐이다. 또, 드물게 中國國內를 本貫으로 하는 氏族이 存在한다(曲阜孔氏等).

韓國의 主要한 本貫Edit

金海金氏 金海伽倻의 王族을 루트로 하는 氏族. 伽倻初代王 首露王의 子孫과 稱한다. 同名의 本貫에 日本에서 건너 온 金忠善을 始祖로 하는 것이 있지만 別本貫取扱이 된다. 區別하는 境遇는 前者를 駕洛, 後者를 友鹿이라고 부르는 境遇가 있다. 金海許氏는 金海伽倻의 首露王의 子孫으로 해, 金海金氏와 同本貫取扱으로 한다. 이것은, 首露王과 王妃許氏의 사이에 10名의 아들이 있어 그 中 2名에게 許姓을 自稱하게 했다고 하는 것부터 와있다.

密陽朴氏 新羅景明王의 長男 朴彦沈을 루트로 하는 氏族. 新羅初代王 朴赫居世西干을 始祖와 稱한다.

全州李氏 新羅의 고관리한을 始祖와 稱한다. 公式的으로는 朝鮮王朝의 初代, 李成桂는 이 氏族의 출로 되어 있다(女眞族이라고도 한다) 。

慶州金氏 新羅王族을 루트로 하는 氏族. 金姓新羅王의 先祖, 金閼智를 始祖와 稱한다.

全州金氏 新羅末期의 第56代敬順王의 第4 王子 金은설의 것이 8세손, 금대서가 몽골의 侵攻에 依해서 全州에 移住해 始祖가 된다.

善山金氏 新羅王族을 루트로 하는 氏族. 新羅王族 金선궁을 始祖로 한다.

慶州李氏 新羅初期의 豪族을 루트로 한다. 始祖를 알평이라고 稱해, 新羅建國時의 6마을(新羅六部)의 하나, 及梁部의 村長을 하고 있었다.

慶州崔氏 慶州李氏와 같이, 新羅建國時의 新羅六部의 하나 沙梁部의 村長이었던 蘇伐都利(崔淵源)를 始祖와 稱한다. 慶州鄭氏 新羅建國時의 新羅六部의 하나, 본그부의 村長이었던 智伯虎를 始祖라고 稱한다. 儒理王 때에 鄭姓을 結實性되었다고 하고 있다. 第42代子孫인 鄭珍厚를 나가서 本貫을 慶州鄭氏로 했다. 智伯虎를 先祖로 하는 鄭氏의 元祖格이다.

迎日鄭氏 智伯虎의 子孫으로, 新羅의 諫議大夫인 鄭宗殷이 始祖. 迎日鄭氏, 烏川鄭氏라고도 한다. 知奏事公派, 監務公派, 良肅公派로 나누어진다.

東萊鄭氏 智伯虎의 子孫으로, 高麗의 安逸戶長인 鄭繪文이 始祖. (鄭繪文의 앞계는 脫解王時, 高句麗系의 多婆那國民이라고는 說이 있다. )

河東鄭氏 같은 本貫이면서, 智伯虎의 子孫인 鄭道正를 始祖로 하는 派와 鄭遜位를 始祖로 하는 派, 鄭膺을 始祖로 하는 派가 있다.

慶州孫氏 新羅建國時의 新羅六部의 하나, 漸梁部의 村長이었던 仇禮馬를 始祖라고 稱한다.

慶州裵氏 新羅建國時의 新羅六部의 하나, 韓岐部의 村長이었던 祇저를 始祖라고 稱한다. 나카소로 하는 裵玄慶은 高麗의 開國公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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