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DOM


映畵理論(英語 Film theory)은, 映畵라는 것의 本質을 論議해, 槪念上의 體制를 提供해, 作品과 리얼리티, 다른 藝術分野, 個個의 觀客, 그리고 社會과의 關係에의 理解를 催促하기 依한 理論이다. 映畵理論은, 個別의 映畵作品에 對한 物件인 것보다도 오히려, 미디어로서의 映畵에 對한 物件이지만, 理論家들은 자주, 個個의 作品을 그들 自身의 理論生成에 있어서의 例로서 利用하는 일이 있기 依해, 個別作品에 對한 論議에도 들어맞는 것이 많다. 映畵 理論은, 一般的으로, 個別作品을 評價하는 것에 集中하는 「映畵批評」이라고 區別된다. 映畵理論은 또, 「映畵分析」이라고도 區別할 수 있다. 「映畵分析」은, 全體的으로의 映畵作品(作品의 本體)의 構造에 對하고, 作品의 具體的인 여러가지 모습이 어떻게 서로 關係하고 있는지를 記述하는 것을 目的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映畵理論」은, 觀客에게 있어서 自身이 보는 것을 컨트롤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에 두어 映畵는 리얼리티와는 다른다고 하는 것을 記述하는 것이어, 「映畵分析」은, 具體的인 쇼트가, 未來의 플롯・포인트에 對한 觀客의 知識을 制限한다고 하는 것을 記述하는 것이어, 「映畵批評」은, 撮影監督이 行하는, 서스펜스를 增大시키는 후레이밍의 使用을 稱讚하는 것말하자.

略歷・槪要편집

몇 個의 點으로, 프랑스의 哲學者 앙리・베루크 손의 著作 「物質과 記憶」이, 映畵가 새로운 미디어로 해 確實히 태어나고 있다고 하여, 1896年 當時에 映畵理論의 發展을 豫測하고 있다. 運動에 對한 思考의 새로운 方法에의 必要에 對해 코멘트해, 「時間 이미지 image-temps」( 「時間으로서의 映像」의 뜻) 및 「運動 이미지 image-mouvement」( 「運動으로서의 映像」의 뜻)이라고 하는 말을 發明했다. 그렇지만, 1906年의 詩論「映畵的幻想 L'illusion cinematographique」(著書「創造的 進化」收錄) 속에서, 그는 論하려고 하는 일의 擧例로서 映畵를 拒絶하고 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數十年後, 哲學者 질・두르즈는 그 著書 「시네마 1」 및 「시네마 2」(1983年- 1985年) 속에서, 「物質과 記憶」을 두르즈의 映畵哲學의 基礎로서 取해 찰즈・산다스・퍼스의 記號論과 照合이면서, 베루크 손의 컨셉을 再探訪했다. 이탈리아의 미라이파 리통트・카누드는, 最初의 眞正한 映畵理論가라고 생각되고 있다. 1911 年, 「第7 藝術의 誕生 The Birth of the Seventh Art」를 著述했다. 또 하나의 初期의 試圖는, 心理學者 휴고・물스타바그가 著述한 「映畵劇The Photoplay」(1916年)에서 만났다. 이른바 古典的映畵理論(1910年代부터 거의 1970年까지)은 사일런트機에 興해, 映畵라고 하는 미디어의 重要한 要素의 定義에 거의 關與했다. 제르메이누・듀락크나 루이・데룬크, 쟌・에프스탄, 셀게이・Eisenstein, 리플렉스 카메라・쿠레쇼후, 지가・베르트후, 폴・로사라고 하는 映畵監督의 作品, 및 루돌프・아룬하임이나 베라・바라쥬, 지크후리트・쿠라카우아라고 하는 映畵理論家가 主로 映畵理論을 進化시켰다. 이것들 各個人이, 映畵가 얼마나 리얼리티와 다른 것인가, 혹은 映畵의 藝術로서의 獨自性을, 直觀的 또는 論理的으로 探求했던 것이다. 第二次世界大戰後 數年가운데, 프랑스의 映畵批評家이며 映畵理論家인 안드레・바잔이, 映畵에의 이 어프로치에 對해서 리액션을 일으켰다. 映畵의 本質은 리얼리티와의 差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리얼리티를 機械的으로 再生産하는 能力에 있는 것이라고 論駁했다. 바잔은 影響力의 큰 雜誌 「手帖・듀・시네마」를 共同으로 創刊했다. 「手帖」雜誌는, 映畵理論보다 映畵批評에 依해 關與했지만, 「作家主義理論」의 誕生의 땅에서 만났다. 後에 映畵監督이 된 프랑소와・트류포나 쟌=배낭・고다르라고 한 「手帖」雜誌의 젊은 批評家들은, 大衆的인 할리우드 映畵를 아주 眞摯하게 하나의 藝術形式으로서 取한 最初의 人物들이었다. 「西部劇」이나 「갱 映畵」에의 그들의 熱狂이, 장르 硏究의 發展을 催促했다. 1960年代- 1970年代에 있고, 映畵理論은 學問至上主義에 對하고 市民權을 얻지만, 그 地盤을 굳힌 것이 60年代에 同時代의 프랑스 映畵를 素材로 해 考察한 크리스챤・메츠의 映畵記號學인 것은 否定할 수 없다. 70年代에 映畵理論은 精神分析學, 人類學, 文學理論, 記號論이나 言語學이라고 하는 旣成의 學問分野로부터 컨셉을 輸入했다. 그러나, 精神分析學의 境遇와 같이, 現在는 그 槪念的骨組의 實效性이 疑心되는 論考도 많이 나타났다. 그 中에서도 影響力있는 英國의 雜誌 「스크린」에 促求받은 傾向이다. 메츠의 映畵記號學以外에도, 피에로・파오로・파조리니, 유리・복권 맨, 움벨토・에이코 等, 80年代前半까지는 世界的으로 記號學的・記號論的인 思考가 映畵理論에 있어 支配的이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으로서 總稱되는 文化的諸現象(高度 消費社會의 出現, 「歷史의 臨終」, 折衝的 스타일이나 過去에의 노스탈직한 鄕愁, 等 )이 顯著하게 되면, 映畵理論에는 「카르츄랄・스타디즈」的인 思想의 影響이 나타나 왔다. 그 中으로, 인타테크스츄아리티나 장르가, 映畵의 理論的硏究와 映畵史를 잇는 重要한 槪念으로서 注目받아 興味로운 個別硏究도 나타났지만, 그것들은 普遍的인 映畵 理論으로서 體系化되는에는 이르지 않았다. 映像技術에 있어서의 1990年代의 디지털革命은, 多樣한 方法으로 映畵理論에 임펙트를 가졌다. 셀룰로이드・필름이 그 瞬間의 指標的映像을 놓치지 않고 capther-할 수 있는 것에 다시 焦點을 맞힐 수 있고 있다. 메어리・안・돈이나 필립・로젠, 롤러・마르비等 映畵理論家에 依하는 것이다. 톰・가닝, 미리암・한센, 백합・트비안이라고 하는 著述家들이, 初期映畵의 上映, 實踐, 觀客의 모드의 歷史的再探訪을 實施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새로운 映畵理論의 骨組를 提示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찌기 蘇聯・몽타쥬派가 映畵藝術의 本質을 이루는 普遍的構成原理로서 몽타쥬를 提示하거나 바잔이 「映畵言語의 進化」라고 하는 觀點으로부터 리얼리즘 映畵論을 밝히거나 메츠가 精密한 科學的分析裝置로서 記號學的인 體系를 밝히고 있었던 時代과는 달리, 現在의 映畵理論은, 映畵史全體를 包括的으로 說明할 수 있으면 自認하는 潮流는 形成하지 않고, 個別的으로 非體系的인 「槪念創出」의 試圖에 머무르는 傾向이 强하다. 두르즈의 「시네마」도 決코 體系性을 目標로 하고는 있지 않고, 어디까지나 그러한 試圖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자.

Ad blocker interference detected!


Wikia is a free-to-use site that makes money from advertising. We have a modified experience for viewers using ad blockers

Wikia is not accessible if you’ve made further modifications. Remove the custom ad blocker rule(s) and the page will load as expected.

Also on FANDOM

Random 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