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惟政(1544年- 1610年)은 朝鮮僧侶. 尊稱은 「松雲大師」. 居處에 聯關되어 「四溟堂」이라고도 稱한다. 壬申倭亂으로, 義僧兵의 總指揮官으로서 日本軍과 果敢하게 싸워, 또 加藤淸正이나 德川家康와 會談해 講和交涉을 實施하는 等 外交面에서도 큰 役割을 完遂했다.

經歷편집

慶尙南道密陽郡의 出身. 13歲에 佛門에 入門한다. 18歲에 僧科에 合格. 그 後, 妙香山西山大師休靜의 直弟子가 되어, 3年의 苦行의 끝, 31歲 때에 大悟. 壬申倭亂 때, 朝鮮宣祖는 僧侶들에게도 抗日戰을 命해 西山大師를 八道摠攝에 任命했다. 西山大師는 벌써 老齡이었기 때문에, 이 任務를 惟政을 빙자했다. 惟政은 朝鮮의 「義僧兵」의 總指揮官으로서 日本軍과 果敢하게 싸웠다.

惟政과 加藤淸正의 會談편집

1594年, 惟政은, 敵將인 加藤淸正의 陣地에 세 番에 걸쳐서 타, 講和交涉을 實施했다. 兩者는 本心을 털어놓아 서로의 主張을 서로 말했다. 淸正는 惟政으로 向해 「貴國에서는 當身만이 거짓이 없고, 다른 사람은 信用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當時 , 小西行長明나라의 遊擊將軍 沈惟敬의 사이에서도, 獨自的인 講和條件의 서로 探索을 하고 있었다. 小西와 沈惟敬은 講和를 서두른 나머지, 各各의 本國에 對해서 거짓말의 講和條件을 傳하고 있었다. 또 小西와 沈惟敬의 講和交涉은, 朝鮮의 머리 너머로 行해진 것이었다. 清正-惟政라인의 講和交涉은, 그 自體는 成功하지 않기는 했지만, 清正이 豊臣秀吉에 眞實의 情報를 報告한 것으로, 小西-沈惟敬에 依한 거짓의 早期講和構想을 破綻시켜, 最終的으로 朝鮮側에 有利하다고 되는 缺課를 가져왔다.

德川家康와의 會談편집

戰後, 朝鮮側은, 被害者인 自國 쪽으로부터 먼저 講和의 使節을 보내는 것은 朝鮮의 體面을 깍아 내리는 것이다고 생각해 正式의 講和使節을 朝鮮側으로부터 먼저 日本에 보내는 것을 躊躇했다. 그러나 朝・日兩國 모두 本心에서는 早期에 講和를 묶어, 戰後問題를 決着하고 싶었다. 거기서 朝鮮側은, 民間의 僧侶이며, 日本의 武士의 사이에서도 知名度가 있는 惟政을 「探賊使」로서 日本에 派遣했다.

1604年, 惟政은 對馬島로부터 京都로 들어가, 다음 해 3月에 伏見城에서 徳川家康와 會見했다. 이 家康-惟政會談은, 日本과 朝鮮의 國交回復에 큰 役割을 完遂했다. 또 惟政은, 數千名의 朝鮮人捕虜의 歸國도 實現되었다. 惟政과 會談한 家康는, 그의 사람 옆에 感服했다고 한다. 惟政은 漢詩를 만드는 것도 巧妙하고, 日本體制中, 西笑承兌 일나 玄蘇等 日本側의 知識人과도 漢詩의 應酬를 實施했다. 家康-惟政會談은, 後의 12回에 걸치는 朝鮮通信使(1607年-1811年)를 可能하게 한 것으로서 評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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