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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球(celestial sphere)란, 일찌기 行星이나 恒星이 그 위에 붙어 運動한다고 생각할 수 있던 地球를 中心으로 둘러싸는 球體. 또 現代라도, 位置天文學에 對하고 地球로부터 보이는 天體의 方向을 나타내기 爲해서 無限遠의 距離에 있는 假想의 球面狀의 點과 같이 看做하는 일이 있어, 이것도 天球로 불린다.

歷史的槪念으로서의 天球[]

토마스・디그즈는 恒星天을 없애 無限의 宇宙를 想定했지만, 惑星은 太陽을 둘러싼 箱子匠의 天球에 配置되어 있다. 天球는 오랫 동안 實體를 가지는 것으로서 다루어졌다. 紀元前 4 世紀의 아리스토텔레스天動說을 繼承하고, 2 世紀의 프트레마이오스는 著書 「아르마게스트」에 對해 惑星이나 恒星이 그 위에 存在한다고 하는 天球를 導入했다. 當初, 惑星의 움직임을 說明하기 爲한 純粹하게 數學的인 모델인 이 天球의 槪念은, 後에 프트레마이오스自身에 依해서 이 宇宙의 過程을 나타내는 實體的槪念으로서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 宇宙上에서는 地球는 이러한 겹겹의 修正과 같은 天球에 둘러싸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프트레마이오스의 體系는 惑星의 複雜한 實際의 運動을 說明하기 爲해서 周轉圓이나 에칸트點과 같은 窮理가 必要하게 되어 이 素朴한 見解에는 危險함이 恒常 따라다니고는 있었다. 그러나 基本的으로는 이러한 實體로서의 天球를 가지는 宇宙上은 그 後의 아라비아유럽에 거의 그대로 繼承해져서 17 世紀까지 도마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은 없었다. 16 世紀의 코페르니쿠스地動說에 있어도 宇宙는 惑星이 運動하는 箱子가 된 球體와 恒星의 天球(恒星天)와에 둘러싸지고 있었다. 오히려 코페르니쿠스의 體系는 프트레마이오스의 體系 中의 天球로부터의 逸脫을 조금이라도 줄여, 太陽系에 調和를 되찾으려고 한 試圖였다고 把握할 수 있다. 한편, 地球가 公轉한다고 했음에도 關聯되지 않고 恒星의 年周視差는 觀測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의 體系에서는 恒星天이 惑星의 天球보다 훨씬 큰 것이라고 생각할 必要가 생겼다. 코페르니쿠스의 地動說의 普及에 努力한 토마스・디그즈는 恒星天을 없애 恒星이 흩어지는 無限의 宇宙를 導入해, 갈릴레이는 恒星天이 너무나 巨大하다고 해 스스로의 天球圖에 그려 넣지 않았다. 行星의 天球의 槪念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은, 1609年의 「新天文學」에 있어 요하네스・케프라火星, 그리고 다른 惑星의 軌道가 楕圓인 것을 나타냈을 때이다. 케프라는 한편에서는 恒星天의 存在는 維持해 宇宙는 有限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特히 티코・브라에가 간 彗星의 觀測에 依해서 行星의 天球의 생각은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에 눈치채고 있었다. 이 때 行星의 움직임이 完全한 圖形으로서의 球를 基準으로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게 되어, 天球를 實體로서 繼續 保管 維持할 수 없게 되었다. 天球가 없는 케프라의 太陽系上에서는, 惑星은 아무 버팀목도 없는 空間을 그의 發見한 精密한 法則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當時의 생각으로는 놀랄 만한 事態를 가져왔다. 機械論的인 近接作用만으로 運動이 說明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데카르트는, 後의 에테르의 槪念으로 連結되는 소용돌이 뿌리는 流體를 想定했다. 空間을 넘어 單純한 數學에 따라서 作用하는 重力을 定式化한 것은, 神學的인 信念으로부터 이 데카르트의 機械論에 反撥한 아이작크・뉴턴 에 依해서였다.

位置天文學에 있어서의 天球[]

曆의 計算을 하는 境遇는, 자주 地球를 中心으로 天體가 움직인다고 하는 天動說的인 說明을 하는 것이 形便이 좋다. 따라서, 地球로부터 無限大의 距離에 있는 球에의 投映을 行해, 天體는 게다가를 움직이는 것으로 했다. 이 假想的인 天球도 天球라고 불린다. 黃道하늘의 赤道白道等은 天球上의 大圓이다. 天球上의 位置는 赤道座標系(赤緯赤經) 또는 黃道座標系(黃緯黃經)에 依해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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