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啓蒙思想(英語: The Enlightenment, 佛語: Lumieres)는, 理性에 依한 思考의 普遍性과 不變性을 主張하는 思想. 유럽 各國語의 「啓蒙」에 該當하는 單語를 보고 알도록, 原義는 「빛으로 비추어지는 것」이다. 自然의 빛(라틴語: lumen naturale)을 스스로 利用해 超自然的인 偏見을 撤去해, 人間本來의 理性의 自立을 재촉한다고 하는 意味. 17 世紀後半에 잉글랜드에서 興해, 18 世紀의 유럽에 있어 主流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政治的影響力을 가져, 프랑스革命에 影響을 주었다고 여겨진다. 유럽에서 啓蒙思想이 主流가 되고 있던 17 世紀後半부터 18 世紀에 걸친 時代의 일을 啓蒙時代라고 말한다.

定義와 特徵Edit

啓蒙思想은 모든 人間이 共通의 理性을 갖고 있으면 調整해, 世界에 어떠한 根本 法則이 있어, 그것은 理性에 依해서 認知可能하다라고 하는 생각이다. 方法論으로서는 17 世紀以來의 自然科學的方法을 重視했다. 理性에 依한 認識이 그대로 科學的硏究와 結合된다고 생각할 수 있어 宗敎科學의 分離를 재촉한 한편, 啓蒙主義에 根據하는 自然科學이나 社會科學의 硏究는 認識論에 顯著하게 接近하고 있다. 이러한 硏究를 支持하는 理論哲學으로서는 英國經驗論이 主流였다. 啓蒙主義는 科學者의 理神論的 或은 無神論的 傾向이 깊어지게 했다. 英國에 있어서는 自然神學이 流行했지만, 이것은 自然科學的인 方法에 對해 聖書에 根據하는 基督敎神學을 再評價하려는 생각이다. 이 神學은 神의 計劃은 合理的이다고 하는 意味로 旣存의 聖書的神學과는 달라, 啓蒙主義的인 것이다. 自然神學의 具體的인 例로서는 英國의 바네트를 줄 수 있다. 바네트는 聖書에 있는(노아의 方舟 이야기에 있어서의) 「大洪水」를 自然科學的인 法則에 依해서 일어난 것이다고 생각해 데카르트地質學說에 根據해 熱心히 硏究했다. 또 啓蒙主義의 時代에는 聖書를 聖典으로서가 아니고 歷史的資料로서의 文獻으로서 硏究하는 일도 行해졌다. 基督敎的인 歷史的地球觀과는 다른 正常的地球觀이 主張되어 自然神學等에서도 支持를 받았다. 啓蒙主義는 進步主義的인 것과 同時에 回歸的이다. 이것은 啓蒙主義의 理性絶對 主義에 起因한다. 理性主義는 모든 領域에서의 理性의 擴大를 재촉해, 多樣한 科學的 發見에 依해 合理的인 進步가 證明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自然人과 文明人에 同一하게 理性을 調整하는 것은, 文明의 進步에서는 될 수 있어 自然스럽게 回歸하는 思想傾向도 낳았다. 이 時代의 思想에 로마그리스의 古典時代를 重視하는 르네상스的傾向을 볼 수 있는 일도, 이러한 回歸的傾向의 結果이다. 또 時間的인 한 時代의 生活形態가 空間的인 어디엔가 存在할 수 있는이라고 하는 일을 漠然히 假定하는 생각도 指摘할 수 있다. 具體的인 例를 들면, 地理上의 發見에 依해 밝혀진 美國原住民을 未開的段階에 있다고 해, 유럽的文明社會의 前史的인 原始狀態이다고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유토피아的幻想을 隨伴해 原始社會나 古典古代를 美化하는 思想을 養成했다라고 해도 全體的으로 보면 思想의 主流는 進步主義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政治思想으로서는 自然法論이 發達해, 特히 社會契約說이 流行했다. 또 理性의 普遍性이나 不變性은 人間의 平等의 根據로 여겨져 平等主義의 主張이 되어 나타났다. 一般的으로 性善說的傾向이 强하고, 이 時代의 自然法은 거의 理性法과 同意이다. 理性을 信賴하는 傾向은 때때로 實踐理性(卽 良心)의 絶對化에 進行되어, 政治思想에 對해 急進的인 傾向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自然狀態에 對한 分析的硏究나 認識論의 深化에 依해서 實踐理性의 共通性・絶對性은 漸次 疑心되기 始作하게 된다. 經驗法則의 認知主體로서의 純粹理性道德法則實踐主體인 實踐理性과의 分裂傾向은 徐徐히 큰 問題가 되어, 啓蒙思想의 存立基盤을 흔들게 되었다.

啓蒙思想의 舞臺Edit

이러한 啓蒙思想이 展開된 것은, 絶對王政貴族들이 主催하는 個人的인 社交場인 살롱이거나 아카데미나 科學協會라고 한 것 같은 새로운 타입의 知的專門機關에서 만났다. 舊來의 神學的인 大學校와 啓蒙思想은 對立關係에 있는 것도 많았지만, 啓蒙思想을 積極的으로 導入하는 새로운 種類의 大學校도 各地에 登場했다. 舊來의 大學校에서도 從來 가장 權威가 있던 神學大學을 學問的中心으로부터 除外해, 새로운 커리큘럼을 導入하는 것이 行해지게 되었다.

啓蒙主義의 여러 가지 모습Edit

政治思想

啓蒙主義的인 政治哲學은, 優先 토마스・홉브즈에 依해서 體系的으로 整理했다. 홉브즈는 國家理論을 形成하는에 該當되고, 旣存國家를 모델로 하지 못하고, 理念型으로서의 契約國家를 想定했다. 이것은 優先, 現實의 人間觀察로부터 文明社會以前의 原始狀態에 있는 人間社會를 想定해, 그것을 自然狀態로 했다. 한層 더 이 自然 狀態와 現實的인 國家社會의 사이에 一種의 飛躍을 想定해, 그것이 어떠한 契約이다고 했다. 이 契約에 依해서 規定되는 人工的인 國家의 理念型이 卽 홉브즈가 말하는 人工生物 「리바이아산」이다. 이 人工國家의 特徵은 主權이라고 하는 形態로 國家意志를 가지는 것이어, 主權은 構成員인 國民이나 宗敎, 政策等 國家에 附隨하는 모든 일을 服從시킨다고 말해졌다. 이러한 原理的인 國家모델을 提供해, 그 契機로 下等의 契約을 重視하는 생각을 包含하고 있는 것이 啓蒙主義의 國家論의 特徵이다. 홉브즈의 理論을 批判的으로 發展시킨 것이 존・락이다. 락은 1689年에 Two Treatises of Government 「市民政府二論」(或은 「統治論」)을 發表해, 홉브즈에 있어 더욱 不充分한 主權의 分析을 徹底히 했다. 卽 홉브즈에 對하고는 主權은 國家의 構成員인 國民의 契約으로 形成되고 있는데도 關係없이, 國民과 直接的인 關係性을 갖지 않는 第三者的存在였다. 이것으로는 國民은 契約에 依해서 成立한 主權에 對해서는 어디까지나 溫順하고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락은 이 主權을 國民의 代表가 參加하는 立法機關에 依해서 規定되는 것으로 했다. 卽 立法權이 主權이다. 그리고 이 立法機關은 人民의 信託에 依해 成立해, 決定은 多數決에 依하면 되었다. 同時에 主權이 國民의 意思에 反하는 境遇는 抵抗權을 行使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淸敎徒革命의 宗敎性을 批判해 宗敎的寬容을 主張한 락은, 國家論에 있어도 그 立場을 主張하고 있다. 이 후쟌=잭・루소에 依해서 啓蒙主義的인 國家論이 大成된다. 루소는 「社會契約說」에 對하고, 락보다 分析을 進行시켜 國民과 政府를 機構的으로 分離시켜, 主權을 國民으로 設定했다. 그 때문에 루소에 對하고는 主權에 對한 抵抗權은 存在하지 않는다. 政府는 主權을 保管 維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國民은 보다 라디칼인 姿勢로 政府轉覆을 圖謀하는 것이 可能하다. 또 루소의 理論에 特徵的인 것은, 락에 對하고 볼 수 있던 永續的인 立法機關이 存在하지 않는다. 立法은 人格을 갖춘 立法者에 依해서 行해진다고 여겨져 이러한 人格的인 立法은 라이프・사이클을 隨伴한다. 卽 政治的 存在인 國家는 반드시 墮落한다고 생각할 수 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루소의 理論의 特徵은 프랑스革命을 理論的으로 準備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主權槪念에 크게 依存한 國家觀은, 루소의 思想이 프랑스革命을 準備했든, 啓蒙思想의 時代조차 벌써 時代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보르테이르는 社會契約說을 歷史的事實로서 認定하지 않고, 그는 政治的인 平等主義를 認定하지 않았다. 흄은 國家形成의 契機로서의 社會契約을 完全하게 否定하고, 個人에게 社會性을 調達하는 것은 共感이며, 實踐의 世界에서는 모든 事物은 慣習的인, 따라서 社會的인 基盤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또 國家理性으로서의 主權槪念도 絶對的인 地位로부터 轉落해 간다. 마이넥케가 指摘하고 있을 것 듯이, 國家理性의 利己主義를 法이나 道德의 要求와 一致시키려는 啓蒙主義의 試圖는 基本的으로 成果가 없었다. 啓蒙主義的政治思想이 分明히 한 國家 理性과 國民의 道德意識과의 乖離는 啓蒙主義的인 國家觀의 限界를 나타내, 現實的으로는 프랑스革命의 進展에 隨伴해 保守主義의 立場으로부터 深刻한 批判이 더해지게 된다.

倫理思想

락이 「人間知性論」에 依해서 觀念의 天性性을 否定한 것은 倫理思想에 對해도 큰 影響을 미쳤다. 락에 對하고는 倫理學的本質이 實在的性質을 가져, 經驗的으로 把握된다고 말해졌다. 이것은 純粹理性과 實踐理性에 依한 推理를 同質인 物件이라고 보는 素朴한 생각에 根據하고 있어 理性 레벨에 있어서의 良心의 共有라고 하는 曖昧한 證明에 머무르고 있는 한, 認識論의 深化에 依해서 糾彈되는 것이 當然했다. 實際 啓蒙主義가 純粹理性的認識과 實踐理性的認識을 等價値로 하고 있던 것은, 倫理的인 問題를 자주 機械論的人間論에 還元해 버리거나 社會에 依한 人間疏外가 問題삼아 버렸다. 純粹하게 道德的價値가 論議되는 것은 드물었다. 모페르츄이는 「道德哲學試論」 속에서 不快하게 따라 量的으로 或은 幾何學的으로 道德的價値가 判斷可能하다라고 했다. 또 보르테이르는 자주 파스칼懷疑論을 批判했지만, 積極的인 倫理思想을 展開하지 못하고, 現實 肯定的으로 「寬容」을 主張함에 머물렀다. 파스칼에 比하면 啓蒙主義의 倫理思想은 大體로 表層的이었다. 흄은 「人性論」에 있어 락의 經驗論的立場을 徹底하게 해 모든 觀念의 理性에 依한 基礎부를 否定했다. 實在的本質과 理性的推理 동안에 聯關은 없고, 있는 것은 단지 原因과 結果뿐이어, 一般的으로 理性에 依해 普遍으로 不變으로 되어 있던 그 推理 過程은, 一種의 蓋然的인 法則에 지나지 않는다. 卽 純粹理性의 否定이다. 또 흄에 依해서 實踐理性의 領域인 道德을 純粹理性의 眞僞와 같이 判斷하는 것은 不可能하다라고 되어 그것들은 行爲나 事物의 實踐的把握에 必然的에 따르는 印象에 依하면 되었다. 이 印象은 共感이라고 할까들로 一定한 社會 或은 사람들의 사이에 共有되고 있는 것이어, 社會的基盤을 가진다. 이 共感이 社會的基盤을 가지는 것은, 道德的價値判斷이 純粹理性에 依하는 것은 아닌 것을 나타내 보이고 있어 흄은 純粹 理性과 實踐理性을 分離하는 것과 同時에, 啓蒙主義的立場에 依한 道德의 把握에 根源的인 批判을 더했다. 흄의 重要한 指摘을 繼承해, 啓蒙主義以後의 倫理思想을 支持한 것은 제러미 벤담功利主義칸트에 始作하는 獨逸觀念論이다. 벤담은 흄의 指摘을 받고, 道德的原則이 社會基盤을 갖는다고 하는 立場을 보다 深化시켜, 社會的基盤으로부터 생기는 人間의 根本的인 要素로서 快樂과 苦痛을 設定했다. 「道德 및 立法의 諸原理」 속에서 快樂과 苦痛을 數學的으로 計算하는 것으로, 道德的問題는 解決可能하다라고 했다. 이 著作이 立法的인 問題에도 接하고 있는 것이 나타내 보이도록, 벤담은 이러한 道德原則은 그대로 社會의 立法原則에도 適用可能하다라고 했다. 벤담의 理論을 批判的으로 發展시켜, 어느 意味 흄적 立場에 回歸시킨 것은 존・스튜어트・밀이다. 밀은 벤담의 快樂과 苦痛에 依한 單純한 理論을 批判하고, 勇氣나 誠實이라고 한 것 같은 質的인 評價도 考慮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道德的 制裁로서 벤담이 法律에 依한 規制等의 外部的制裁를 重視한 것에 對해, 밀은 흄的이고 內面的인 良心을 設定해, 外部的制裁以上으로 重要한 것이다고 말했다. 功利主義는 經驗論的인 傳統에 끊고 있어 先驗的인 超越論 道德論에는 批判的으로 그 意味에 對해 英國經驗論의 正統인 後繼者였다. 또 方法論的으로는 心象을 重視하는 心理學的立場을 取했다. 이마누엘・칸트는 흄에 依해서 세울 수 있었던 純粹理性과 實踐理性의 分析的立場을 繼承해 徹底히 했다. 그는 흄에 따라서 純粹理性을 否定했다. 卽 「純粹理性批判」에 依해서 純粹理性의 外界인 物自體를 想定해, 그것을 經驗則으로부터 分離했다. 한편으로 實踐理性에는 物自體나 經驗則과는 別個에 實踐主義的인 原理를 想定해, 그것을 格率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格率은 個別的으로 個人에게 存在하는 것이지만, 同時에 어떤인가 普遍的인 道德法則과의 同一性을 目標로 하는 것이라고 規定했다. 칸트는 普遍的인 道德法則이란, 어느 行爲에 對해 無條件的으로 「이렇게 해라」라고 命令하는 定言的命令에 있다고 했다. 普遍的인 道德法則의 行爲主體는 目的自體로서 物自體와 같이 個人의 實踐理性(卽 格率)의 外側으로 設定했다. 칸트 以前의 道德哲學은 理性主義를 取한다고 해도, 반드시 個人의 內面에 道德的原則을 設定해 있었지만, 칸트에 依해서 目的自體(定言的命令으로서 表現된다)와 格率이라고 하는 形態로 分離가 完遂해져 同時에 不可知論的立場이 設定되었기 때문에, 啓蒙主義的理性主義는 道德哲學으로부터도 追放되기에 이르렀다.

歷史硏究

18 世紀가 「非歷史的」인 世紀였다고 하는 로망主義의 主張은 올바른 것으로는 없다. 啓蒙思想은 諸國家의 歷史를 等價値에 어느 種의 法則性 속에 還元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啓蒙主義의 「非歷史」性의 證明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로마의 古典古代에 對한 이 時代의 關心의 높음은 反對로 啓蒙主義의 「歷史性」을 證明하고 있다. 歷史學에 있어 啓蒙主義的回轉을 實現한 것은 프랑스의 베일이다. 그는 「歷史批評 事典」을 著述해, 寫實的인 것을 그 自體로서 愛好하는 立場을 나타냈다. 이것은 中世的인 神學的歷史觀이 神의 意思나 客觀事實로부터 個個의 具體的事實로 考察을 始作하고 있던 것에 對해, 具體的事實을 그 自體로서 尊重하는 立場을 나타냈다. 샤를 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는 베일의 立場으로부터 한 걸음 進行하고, 歷史的 思想으로부터 理念型을 꺼내, 그 現實的인 社會科學에의 應用을 實踐했다. 「法의 精神」에 있어서의 政體論은 歷史的으로 存在하는 政體를 構造的으로 分析해 構築된 理念型에 根據하고 있다. 이러한 槪念은 歷史的政體의 共通性을 뽑아내 一般化한 抽象 槪念이 아니고, 歷史의 硏究를 通해서 얻을 수 있던 그러한 本質이다. 이러한 政體 槪念은 普遍性을 갖추고 있어 現實社會의 評價에 適用可能하다라고 되었다. 그러나 몽테스키외는 同時에, 이러한 理性의 産物인 政體槪念을 恒常 現實의 社會狀況에 쬐고 批判的으로 보는 것을 決코 잊지 않았다. 그 獨自的인 「中庸」인 視點은 몽테스키외가 아직도 啓蒙主義的으로 徹底되어 있지 않은 것을 나타내는 것과 同時에, 그의 學問的價値가 啓蒙主義를 넘고 있던 것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보르테이르는 歷史硏究에 自然科學的手法을 보다 嚴密하게 適用하려고 했다. 그는 「風俗試論」 속에서, 個個의 歷史的事件으로부터 歸納的으로 이끌린데 等인가의 根本 原則을 想定해, 그것을 把握하는 것에 勤務했다. 이것은 表面上 從來의 神學的 歷史觀에의 接近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神學的歷史觀이 目的의 實現 過程으로서 歷史를 나타낸 것에 對해, 그는 그러한 것에 代身하는 어떠한 心理學的 原因을 要求하려고 했다고 생각된다. 그는 神學的歷史觀의 代表인 보슈에의 「世界史論」을 激賞하면서, 歷史的事件에 神學的인 意味를 賦與해를 하고 있는 것이 잘못이라고 해 「끊임 없이 純金에 안의 寶石을 끼워넣고 있다」라고 批判했다. 「로마 帝國衰亡史」를 著述한 基本도 보르테이르의 影響을 받고 있다. 흄은 보르테이르로 보여진 啓蒙主義的傾向을, 自身의 理性批判的精神에 依해서 批判했다. 흄은 歷史的世界의 根本原則과 같은 것을 否定했다. 獨逸의 헬더는 抽象的인 歷史原則을 最終的으로 否定해, 啓蒙主義的인 歷史觀에 終止符를 찍었다. 그는 라이프닛트의 單子論에 影響을 받고, 個個의 歷史的事實을 球에 比喩해 球가 中心을 가지도록, 個個의 歷史的事實도 核心을 가진다고 말했다.

經濟思想

啓蒙主義의 具體的成果로 最大의 것의 하나인 百科事典派에 依한 百科事典 「百科事典」이, 「科學과 技術과 技法의 理性的인 事典」이라고 自己를 定義하고 있는 것은, 産業的인 것, 經濟的인 物件에 對한 啓蒙主義의 關心의 높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理性의 性善說에 根據하는 功利主義的인 人間觀은 經濟思想에 對해 큰 進步를 가져왔다. 프랑스의 케네이는 經濟活動의 考察에 理性主義的인 根本法則을 設定했다. 그는 「經濟表」에 對하고, 財貨의 再生産過程을 圖式化해, 富는 商業에 依해서 얻을 수 있다고 하는 傳統的인 重商主義的立場을 批判하고, 富는 生産에 依해 진짜 意味로 增産되는 것을 나타냈다. 그가 말하는 生産은 農業을 念頭에 두고 있어 그 意味로 重農主義로 불린다. 重農主義라고 하는 名稱은 듀퐁의 著作 「重農主義」에 根據하고 있다. 케네이가 말하는 富가 槪念으로서 公共的인 利益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個人的인 富로서의 私的인 利益에 있는 것은 말할 必要도 없다. 케네이는 私的인 利益의 增産을 約束했지만, 그것은 公的인 利益으로 連結되는 것일까. 同時代의 思想家인 에르베시우스는 그의 政治理論 속에서 漠然히 公共의 利益과 私的利益이 立法機關에 依해서 調停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이 問題는 政治理論의 問題에 머무르지 않고, 經濟理論도 이것으로 向하지 않으면 안 되는 運命에 있는 것은 明白했다. 아담・스미스는 「諸國民의 富」 속에서 케네이의 理論에 根據하는 經濟世界를 그 自體로 完結시켜, 이러한 社會에는 「神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하는 豫定調和的 性格을 設定했다. 이 社會의 運營主體로서의 統治(卽 政府)를 設定했다. 스미스에 對하고는 政府는 財貨를 낳는 經濟主體와는 다루어지지 못하고, 이러한 政府의 公共性을 支持하는 思想으로서는 흄的인 共感이 생각되고 있다. 또 스미스는 産業革命 以前의 時代에 살아 있었음에도 關聯되지 않고, 工業化가 가져오는 分業과 그 合理性을 指摘하고 있다. 스미스를 繼承한 리카드는 「經濟學 및 課稅의 原理」를 著述해, 스미스의 理論을 發展시켜, 最終的으로 公權力이 排除된 經濟社會를 設定해, 公權力과 經濟社會를 二元的 으로 分離한 것에 依해, 經濟社會의 法則性에 立脚한 古典經濟學을 確立했다. 또 生産物의 價値가 稀少性과 거기에 消費된 勞動에 依한다고 해, 勞動價値를 根據 지었다. 이러한 古典經濟學은 生産의 要素로서 土地와 資本, 勞動을 調停해, 各各 地主, 資本家, 勞動者라고 하는 階級을 設定해 나가게 된다. 여기에서는 啓蒙思想에 對해 顯著한 平等主義는 이미 完全하게 消滅해, 萬名에게 平等한 事實로서 階級制度의 必然性을 提示했다.

解放思想

啓蒙思想의 理性主義는 人種問題나 人間의 未開狀態에 對한 問題라고 한 것 같은 差別的인 問題를 養成한 한편, 平等主義的인 解放思想을 낳았다. 렛싱은 戱曲 「賢者 나탄」에 對하고, 猶太人의 나탄을 主人公으로서 그 美德을 强調해, 偏見으로부터의 脫却을 말했다. 렛싱과 親交가 있던 猶太人의 哲學者 Mendelssohn은 猶太敎基督敎의 信仰의 差異가 人間的價値에 差異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해 猶太人의 法的解放을 呼訴하는 한편, 閉鎖的인 猶太敎의 側에도 改革의 必要性을 느껴 猶太敎內部에서의 啓蒙活動인 「하스 칼라」를 展開했다. 啓蒙思想에 觸發된 칸트도 「責任 있는 自己」의 必要性과 根據짓을 實施했다. 칸트에 依하면, Aufklarung과는 「人間이 自己自身에게 責任을 가져, 未成年狀態로부터 빠져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남에게 依存하는 일 없이 自身의 悟性을 使用하는 決斷과 勇氣를 몸에 익혀 마지막에 「아는 것을 감히하라!자기 自身의 悟性을 使用하는 勇氣를 가져라!」라고 하는 標語에 歸結된다고 하고 있다. (칸트"Was ist Aufklarung? "「啓蒙이란 무엇인가?」로부터 이 標語에는, 優先 個人이 自己自身의 知性의 行使에 勇氣를 가지게 되고 처음으로 社會가 改良될 수 있을 생각이 背景에 있다. 近隣諸國에 經濟的・文化的에 늦어를 取하고 있던 獨逸에 있어서, 啓蒙思想은 보다 强하게 表現되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啓蒙思想은, 國家・社會・宗敎等 모든 것에 對해서 理性 一邊倒主義로, 數學的이고 平板的인 合理主義的이 特徵이었다. 이 생각은 普及하면, 이윽고 「理性이라면 바구니의」, 卽 感情이나 信仰 或은 生命的 에너지(生 그 自體)와 같은 理性의 테두리에 들어가지 않는 것에의 說明에 對해서는, 不充分한 것인 것이 드러내 왔다. (이른바 生의 哲學의 달리기와도 풀 수 있다) 이 흐름은, 反啓蒙思想의 흐름을 낳아, 獨逸의 詩人 하맨(그는, 칸트의 親舊였다) 等에 嚴格하게 批判된 것 外, 괴테・시라等의 古典時代를 規範으로 한, 古典主義文學等으로 展開되어 갔다. 또, 啓蒙思想에 觸發된 칸트도, 이윽고 批判哲學에 있어서의 著作( 「純粹理性批判」等)으로 이윽고 理性의 限界를 論하게 되어, 啓蒙思想의 超克을 재었다. 그러나, 이 「스스로의 悟性을 使用하는 決斷과 勇氣」의 本然의 姿勢는, 칸트 以後, 獨逸觀念論等의 19 世紀의 獨逸哲學의 課題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 유럽에서 일어난 啓蒙思想은, 그 後 世界各國에서 普及했다. 또 近代敎育學의 成立에도 影響 주는 等, 多大한 影響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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