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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寅敎獄이란, 1866年 3月에 朝鮮에서 일어난 基督敎彈壓事件. 天主敎大彈壓, 丙寅邪獄, 丙寅敎難이라고도 한다.

背景과 經過[]

元來 興宣大院君은 基督敎에 友好的이었다(아내가 基督敎徒였다고 말한다). 러시아南下政策에 依해서 러시아가 通商을 要求하면, 基督敎徒들은 興宣大院君에 三國同盟(朝鮮, 프랑스, 英國)을 申請했다. 그러나 時間의 遲滯에 依해서 計劃은 失敗해, 興宣大院君은 基督敎徒를 擁護한다고 하는 非難을 받았다. 非難을 終熄하기 爲해서 일어난 것이 丙寅敎獄이다.

파리外國宣敎會로부터 派遣되어 朝鮮에 潛入하고 布敎에 臨하고 있던 시메온=프랑소와・베르누 主敎(Simeon-Francois Berneux) 외 9名의 프랑스 宣敎師, 朝鮮高宗의 乳母(朴몰타)를 包含하고, 8,000名에 미치는 信者가 虐殺됐다. 捕盜大將李景夏의 活動이 有名.

仔細한 것은 「丙寅洋擾」를 參照

프랑스는 이 事件에 抗議하고, 極東艦隊의 거의 全戰力이 되는 軍艦 7隻・兵力 約 1300名을 派遣해, 殺害에 對한 賠償, 責任者의 處罰, 通商條約의 締結等을 要求해 江華府를 占領했다. 大院君은 이러한 要求를 拒否해, 擊退했다.

主된 殉敎者[]

Bishop Simeon-Francois Berneux (1866年 3月 8日)

Bishop Antoine Daveluy (前述)

Just de Bretenieres (前述)

Louis Beaulieu (前述)

Pierre Henri Dorie(1866年 3月 30日)

Pierre Aumaitre (前述)

Luc Martin Huin (前述)

殉敎者의 慰靈[]

現在, 虐殺된 天主敎徒들을 爲해 서울 麻浦區 合井洞에 있는 龍頭峰이 切頭山聖地로서 整備되어 追悼施設이 만들어져 있다. 1966年, 丙寅迫害 100周年을 紀念해 切頭山殉敎博物館切頭山巡禮聖堂과 함께 記念館이 着工되어 다음 해에 完成. 1972年에는 殉敎者紀念公園이 造成되었다. 後의 1984年에는 로마敎皇 요한・파울로 2世, 1985年마더・테레사가 訪問하고 있다.

그 外의 基督敎彈壓[]

朝鮮(1392年-1910年)은 19 世紀, 基督敎를 禁止했지만, 宣敎師는 潛入, 信者는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몇 番이나 彈壓을 實施하고 있다.

1801年-辛酉敎獄: 淸나라인 宣敎師 周文謨進士黄嗣永外 300名 남짓을 處刑

1839年-己亥敎獄: 프랑스人 宣敎師 로란=마리=죠제프・안베일 外 200명 남짓을 處刑

1846年-丙午敎獄: 金大建外 20名 남짓을 處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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